의인 이수현 20주기… “그는 우회하지 않는 ‘폼생폼사’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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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오르면 ‘멋져야 한다’며 담배를 물었습니다. 잘 때는 샤워가운을 입어야 했죠. 그야말로 ‘폼생폼사’였어요.”

일본에서 선로에 추락한 현지인을 구하려다 세상을 떠난 고 이수현 씨. 살아생전 이 씨는 친구의 뇌리에 이렇게 남아 있다. 언론에서 다뤄진 것처럼 ‘진중하고 의협심 넘치는 캐릭터’와는 사뭇 다른 이야기다. 친구는 이 씨를 젊음을 즐기면서도, 여느 또래와 마찬가지로 미래를 불안해했던 평범한 청춘으로 기억한다.

친구인 장현정 ‘호밀밭’ 대표
평전 ‘이수현, 1월의 햇살’ 발간

이 씨는 2001년 1월 26일 일본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철길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세상을 떠났다. 오는 26일은 그의 20주기 기일이다. 가족과 친구들은 이 씨를 다시 기리고자 그의 첫 평전 <이수현, 1월의 햇살>을 세상에 내놓았다.

평전을 출간한 도서출판 ‘호밀밭’ 장현정(사진·46) 대표가 이 씨를 처음 만난 건 1999년이었다. 장 대표가 보컬로 활동하던 밴드에 주변의 소개로 합류한 기타리스트가 이 씨였다.

장 대표는 “처음 만났을 때도 수현이는 할 말 다 하는 게 퍽 되바라져 보였다. 같이 지내보니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우회하거나 꼼수를 부리지 않는 스타일이었다”고 추억했다. 이 씨의 생활신조였던 ‘폼생폼사’가 결국은 ‘옳다고 믿는 것은 꼭 해야 한다’는 신념의 다른 표현이었던 셈이다.

장 대표와 친구들은 생면부지의 일본인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그 순간까지도 이 씨는 ‘생명은 소중하다’는 신념 하나로 행동했을 거라 굳게 믿는다. 그래서 지인들은 이를 ‘이수현 정신’이라 부른다.

일본에서는 '이수현 정신'을 기리기 위해 신오쿠보역 부근에서 매년 ‘이수현 추모 간담회’를 연다. 행사에는 ‘LSH(이수현) 아시아 장학회’ 소속 회원과 이 씨를 기억하는 현지인, 재일교포가 참석한다. 2019년 추모 행사에서는 한 참석자가 ‘우리는 인간’이라고 건배사를 외쳐 화제가 됐다. 이 씨의 값진 희생 앞에서는 한국과 일본 사이 앙금도 잠시나마 허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씨를 기리는 행사가 매년 열리고 있는 일본 현지와 달리 고향인 부산에서는 ‘이수현 정신’이 빛을 잃어가고 있다. 장 대표는 “한일 관계가 날로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수현이의 죽음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다시 한번 되짚어 봐야 한다”며 “국가와 인종, 성별과 세대의 벽을 넘어 공감의 길로 나가는 것이야말로 수현이가 원했던 세상”이라고 강조했다.

박혜랑·손혜림 기자 rang@

사진=정대현 기자 j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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