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감각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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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사천시가 ‘사천 8경’ 중 하나로 꼽는 실안낙조를 보고 왔다. 지지난 주 <부산일보>에 실린 ‘인생 최고 일몰 사진, 사천 실안 해안둘레길에서…’라는 기사 덕분이다. 삼천포항에 들러서 점심을 먹고, 느긋하게 실안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하다가 전망 좋은 카페에서 지는 노을을 보기로 했다. 함안과 진주를 지나 사천시에 진입했는데 새삼 놀랐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지만, 아파트가 늘었고, 크고 작은 상가가 여느 도심과 다르지 않았다. 갯벌과 노을이 있는 바다 풍경이 아니었다면 굳이 사천까지 갈 이유가 없을 뻔했다. 실안낙조는 사천 특유의 DNA가 되는 셈이다.

여행의 묘미는 일상생활에서 무뎌진 감각, 즉 후각과 미각, 시청각, 그리고 촉각까지도 되살리는 기회에 있다. 관광 트렌드 역시 점점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는 체험이거나 주민밀착형이 주목받는 추세다. 소위 감각유산이 뜨고 있다. 감각유산은 흔히 그 지역 고유의 향과 빛깔과 맛과 질감을 의미한다. 누군가가 의무감을 갖고 지켜 주지 않으면 너무나 쉽게 사라져 버릴 것들이다. 예를 들면 옛 정취가 살아 있는 골목 풍경이나 오일장을 찾아 나서고, 생태 숲길을 걷고, 고택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멍 때리기'를 하고, 갯벌과 염전, 별빛마을에 스며드는 식이다.

최근 프랑스 상원에서는 시골 생활에서 발생하는 각종 소음·냄새를 보호하는 ‘감각유산법’을 최종 승인했다. 가장 원초적인 감각이 법으로 보호됐다. 수탉 등 가축 울음소리 외에도 소에 단 방울 소리, 헛간 가축 냄새, 이른 아침의 트랙터 소리도 포함됐다. 법 제정 배경은 행락객과 시골 주민 간 갈등이었지만, 시골에 산다는 건 몇몇 성가신 일들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일종의 강력한 메시지”였다. 2019년에도 프랑스 한 시골 마을에선 모리스라는 수탉이 아침마다 이웃에 소음 공해를 일으킨다는 이유로 소송전이 벌어졌다. 이때도 법원이 모리스의 ‘울 권리’를 인정했다.

급격한 도시화로 지역다움을 상실해 가는 곳이 늘고 있다. 감각유산은 한번 파괴되면 원래 모습을 되찾기 힘들어진다. 이제 우리는 문화유산에 이어 감각유산도 관리 보존해야 할 유산 목록에 포함해야 할지 모르겠다. 수탉 울음소리까진 아니더라도 지역 고유의 감각유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때다. 부산이라고 다르지 않다. 지극히 부산다움을 유지할 때 지속가능해진다. 그 부산다움을 계속해서 찾고 지키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몫이지만 말이다. 김은영 논설위원 key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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