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정합의안 부결… 다시 먹구름 드리운 현대중 노사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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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노조가 지난 5일 울산 본사 체육관에서 2019·2020년 임단협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함을 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중공업 노사관계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섰다. 노사가 장기간 진통 끝에 마련한 2년치 임단협 성과물이 조합원 투표의 벽을 넘지 못하고 무산됐기 때문이다. 결국 노사 양측 모두 고대했던 ‘설 연휴 전 타결’이 물건너가면서 임단협 재협상과 관계 회복을 동시에 도모해야 하는 더 큰 숙제를 안게 됐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 5일 전체 조합원 7419명을 대상으로 2019·2020년 임금·단체협약 교섭 잠정합의안을 투표에 부친 결과, 투표자 6952명(투표율 93.7%) 중 4037명(58%)이 반대해 부결했다고 밝혔다. 통과 기준인 조합원 과반 찬성을 얻는 데 실패한 것이다.

조합원 전체 투표서 58% 반대
2년치 임단협 최종 타결 무산
노사 신뢰 회복·대안 마련 숙제
설 명절 지나야 교섭 재개할 듯

앞서 노사는 이달 3일 협상 1년 9개월여 만에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2019년 임금 4만 6000원 인상, 성과급 218%, 격려금 100%+150만 원, 복지포인트 30만 원 지급 등이다. 2020년 임단협과 관련해선 기본급 동결, 성과급 131%, 격려금 230만 원, 지역경제 상품권 30만 원 지급 등을 담았다. 또 2019년 5월 법인 분할 과정에서 불거진 양측의 각종 고소·고발이나 소송 등을 취하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잠정합의안이 가결됐다면 현대중공업은 최대 2620억 원을 풀어야 했다. 근로자 1인당 평균 1400만 원씩 챙길 수 있었다. 지역사회 안팎에선 코로나19 사태와 조선업 불황으로 위축된 민생 경제에 훈풍이 불 것이란 기대감이 컸다. 특히 물적 분할 갈등으로 벼랑 끝까지 몰렸던 노사 관계가 회복 물꼬를 텄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왔다.

결과적으로 현장 여론은 노사 모두에 등을 돌리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노조 내부에서는 “이번에는 마무리 짓자”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2년간 투쟁의 결과물이 겨우 이거냐’는 강경파의 반대에 밀려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노조 관계자 역시 “임금과 법인 분할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조합원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듯하다”고 말했다. 울산시도 애초 타결 기대감에 입장문을 내기로 했으나 부결 소식을 접하고 철회했다.

노사는 명절 이후에나 교섭을 재개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노조 입장에선 투표 과정에서 불거진 ‘집안싸움’을 정리하고 조합원 신뢰를 끌어올리는 데에도 다소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회사 또한 새로운 잠정합의안 마련에 대비해 대응책을 찾느라 고심하는 분위기다.

재교섭에 들어가더라도 협상에 속도를 낼 계기가 마땅치 않아 돌파구를 찾기 어려울 수 있다는 어두운 전망도 나온다. 노사가 다행히 이른 시일 안에 2년치 임단협을 매듭짓더라도, 햇수로 3년째 임단협에 매달리는 상황이어서 곧바로 올해 임단협까지 진행해야 한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회사로선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대한의 조건을 제시했지만 부결돼 아쉽다”며 “노조 입장을 들어본 뒤 관련 대책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5일 현대중공업과 함께 찬반투표를 진행한 그룹 계열사 현대일렉트릭과 현대건설기계는 과반 이상 찬성으로 임단협 잠정합의안을 가결했으나, 현대중공업 타결까지 기다려야 하는 형편이다. 노조의 3사 1노조 체제에 따라 현대중공업 합의안이 가결돼야 나머지 2개 회사도 타결 효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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