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주거침입 2년 새 30% 증가… 잠 못 드는 여성 1인 가구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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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간격으로 살인, 성폭행 등 강력 범죄가 잇따랐지만 여전히 어둡고 비상벨도 1개만 설치된 상태인 부산 대연동 원룸 밀집 거리 일대. 부산일보DB 2년 간격으로 살인, 성폭행 등 강력 범죄가 잇따랐지만 여전히 어둡고 비상벨도 1개만 설치된 상태인 부산 대연동 원룸 밀집 거리 일대. 부산일보DB

박민정(22·부산 금정구) 씨는 최근 외출 때 모니터링이 가능한 CCTV를 방 안에 설치했다. 집을 비운 사이 누군가 다녀간 듯한 느낌 때문이다. 여성 혼자 사는 집에서 강력 범죄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자주 접해 불안이 더 크다. 박 씨는 “방에 놓아둔 물건 위치가 달라져 누가 내 방에 다녀갔나 싶어 불안하다”며 “집주인에게 말해도 돌아오는 반응은 예민하다는 답뿐이다”고 말했다.


안전해야 할 집이 범죄 표적으로

강력범죄 이어질 가능성 높지만

수사부터 처벌까지 경범죄 치부

행정당국 주도 안전망 구축해야



강력 범죄의 전조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주거침입 발생 건수가 부산의 경우 2년 전에 비해 30%가량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주거침입은 여성 상대의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부산 대연동에서 발생한 강도강간 사건도 보안이 허술한 원룸의 여성 1인 가구에서 발생했다. 어느 곳보다 안전해야 할 집이 취약한 보안 시설로 범죄의 표적이 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재호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대 생활폭력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갈, 운전자 폭행 전국 발생 건수는 줄어들거나 소폭 상승한 반면 주거침입 건수는 2년 새 40%이상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도 공갈과 운전자 폭행 발생 건수는 지난 2년 전에 비해 줄었지만, 주거침입의 경우 2017년 814건에서 2019년 1055건으로 약 30% 늘었다.

전문가들은 방범에 취약한 1인 가구 증가가 주거침입 증가의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범죄예방처우연구실장 박준휘 박사는 “가족 단위가 거주하는 아파트보다는 1인 가구에서 더 많은 주거침입이 발생한다”며 “경비원과 조명 등 방범 시설을 갖춘 아파트에 거주하기 어려운 청년들이 주거 양극화에 따른 피해를 입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게다가 주거침입은 여성들에게 더 큰 피해를 낳는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측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주거침입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2.276배 높다고 밝혔다. 울산대 강지현 교수(경찰학과)는 “우스갯소리로 주거침입에서 사람을 마주치면 성폭행 혐의, 마주치지 않으면 단순 주거침입이라고 말할 만큼 주거침입은 강력범죄의 전조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거침입은 수사부터 처벌까지 가벼운 범죄로 취급되기 일쑤다. 실제로 2019년 부산 남구 문현동 한 오피스텔에 거주하고 있는 20대 여성 A 씨는 연이어 집 안에 돈이 없어진 점을 이상하게 여겨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 수사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지 않았다. 급기야 스스로 CCTV를 설치해 경찰에게 영상을 넘겨 침입자를 찾기도 했다.

2019년 5월 A 씨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 소재 원룸에 사는 거주자를 뒤따라가 10분 이상 현관문을 열려고 시도하는 등 집에 침입하려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강간 미수의 혐의는 적용되지 않고 주거침입 혐의만 적용됐다. 2019년 8월 부산 사하구 한 오피스텔에 혼자 사는 여성의 원룸 화장실에 침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B 씨는 1심에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주거침입이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음에도 제대로 수사되지 않거나 처벌 수위도 낮아 여성들의 불안은 더욱 크다. 특히 부산은 남성보다 여성 인구가 많고, 여성 1인 가구도 증가하는 추세여서 범죄 취약지역의 안전망 구축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대연동 원룸촌 강도강간 사건이 일어난 지역 인근에 살고 있는 강 모(22) 씨는 “여성들은 사비로 스토퍼, 원룸 내 CCTV 등 방범 장비를 구매하고 있다. 방법이 잘 되어 있는 여성전용 원룸은 월세 등이 일반적인 곳보다 1.5배 이상 차이가 난다”며 “정부나 지자체에서 사고 우려가 높은 지역의 여성 1인 가구에 대한 지원을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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