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비상상고 기각… 피해자들 “이게 나라냐” 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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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고(故) 박인근 전 형제복지원 원장에 대한 비상상고가 기각되자 법정에서 나온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이 박인근 전 형제복지원 원장의 특수감금 혐의에 대한 무죄 판결을 다시 판단해달라며 낸 검찰의 비상상고를 기각했다. 비상상고의 사유가 법이 정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뜻밖의 결과를 받아 든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안타까움을 나타냈지만 진상 규명과 국가 손해배상을 위한 활동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고 박인근 원장 무죄 비상상고
“사유인 법령 위반 해당 안 돼”
대법, ‘존엄성 훼손’ 국가 배상
판결 이후 피해자들 강력 항의
과거사위 조사에 힘 모으기로


■“형법 적용, 법령 위반 해당 안 돼”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11일 박 전 원장의 특수감금 혐의 무죄판결에 대한 검찰총장의 비상상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 전 원장은 32년 전인 1989년 대법원에서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당시 법원이 박씨의 특수감금 행위의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단하면서 적용한 법령은 내무부 훈령이 아니라 정당 행위에 관한 형법 제20조”라고 판단했다. 무죄 판결은 내무부 훈령이 아닌 형법 20조를 근거로 한 만큼 법 적용에 문제가 없다고 본 것이다. 다시 말해 내무부 훈령은 판결의 직접적 근거가 아닌 만큼 비상상고 사유인 법령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형제복지원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분 아래 당시 내무부 훈령에 따라 1975년부터 1987년까지 장애인과 고아 등 수천여 명을 마구잡이로 끌어들여 강제 노역과 학대를 한 의혹을 받고 있다. 박 전 원장은 1987년 1월 특수감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7번의 재판 끝에 1989년 7월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때 재판부는 부랑인을 단속할 수 있도록 정한 내무부 훈령과 훈령에 따른 행위를 처벌할 수 없도록 한 형법 20조에 따른 것으로 봤다.

검찰은 비상상고 심리 내내 “내무부 훈령 자체가 위헌이자 무효이기 때문에 법 적용에 오류가 있기 때문에 무죄 판결은 파기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가 배상 책임은 인정

이날 대법원은 비상상고 기각 사유와는 별도로 국가의 배상 책임은 인정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존엄성이 훼손됐다는 사실은 받아들인 것이다. 안철상 대법관은 “이번 사건의 핵심은 신체의 자유 침해가 아닌 헌법 최고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됐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안 대법관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등의 진실 규명 작업으로 피해자의 아픔이 치유돼 사회 통합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는 대법원이 법리적 이유로 무죄 판결을 유지한 것일 뿐, 조직적 인권 유린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형제복지원 사태의 진상 규명과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 배상에는 부정적 영향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판결 이후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강하게 항의했다. 일부 피해자는 법정을 빠져나오며 “이게 나라냐”고 소리치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들은 과거사위의 진상 조사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자 모임 대표는 “대법원의 이번 판단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피해자들은 대법원의 판단에 동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김한수·안준영 기자 hang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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