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군’은 틀리고 ‘일본군’이 맞다? 헷갈리는 문화재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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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읍성 북장대 인근에 설치된 안내표지판. ‘왜군’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부산 동래구청이 동래읍성 문화재 안내판에 ‘왜군’이라는 표기를 ‘일본군’으로 바꾸면서 일부 시민이 불만을 드러냈다. 이들은 ‘지금껏 사용해 온 왜군이라는 표현을 굳이 바꿔야 할 필요가 있냐’고 반발하고 있다. 반면, 동래구청은 ‘왜군이라는 표현 자체가 비하와 멸시의 의미를 담고 있어 이를 교체하는 게 맞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동래구청 “‘왜’는 멸시 의미 내포”
동래읍성 안내판 교체하며 논란

6일 동래구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동래읍성지 인생문, 송공단, 동래향교 3곳의 안내판을 보수·교체했다. 동래구청은 매년 예산을 투입해 보수가 필요한 안내판을 교체해오고 있다. 하지만 6곳의 동래읍성 안내판 중 일부가 '왜군'이라고 표기됐던 부분을 ‘일본군’으로 바꾸면서, 두 가지 호칭을 혼용하고 있다.

동래구 동래읍성 서장대의 안내문에는 ‘동래읍성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일본군의 1차 공격목표가 되어 동래부사 송상현을 위시한 전투가 벌어졌다’고 설명한 반면, 북장대 인근 다른 안내판에는 ‘임진년 왜군 선봉대 1만 8700명이 난을 일으켜 전쟁이 발생했다’라고 표기하는 식이다.

현장에서 만난 신동순(73)씨는 “‘왜군이라는 표현이 익숙하고 국민적 정서에도 맞다고 생각한다. 굳이 지금까지 써온 왜군이라는 표현을 일본군이라고 바꿔야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왜군’의 존재도 자라나는 세대에게 알려야 할 역사라는 것.

이에 대해 동래구청 측은 외교 환경을 고려했다는 입장이다. ‘왜군’이라는 단어 자체가 멸시의 의미를 담고 있어 가치중립적인 ‘일본군’이라는 단어로 바꿨다는 이야기다. 동래구청 문화재 담당자는 “동래구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왜군’ 대신 ‘일본군’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추세”라며 “특히 문화교육특구인 동래구에서 멸시의 의미가 내포된 표현을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화재 설명과 관련해 ‘왜군’이 비하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 사용을 지양해야 한다는 지침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유적지 안내문안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구청이 안내문안을 작성하고 유관기관과 역사전문가, 시민 등으로 구성된 시민자문단의 평가를 거친다. 그러나 특정 단어마다 표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세우기 어려워 이는 지자체 판단에 맡기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감수 아래 발행되고 있는 역사교과서에도 ‘왜군’과 ‘일본군’이라는 표현이 혼용되어 사용 중이다. 학계에서도 임진왜란 당시의 적군을 설명할 때 ‘왜군’과 ‘일본군’이라는 표현을 모두 쓰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 측은 “학계에서는 여전히 ‘왜군’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긴 하지만 ‘일본군’이라는 표현도 틀린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글·사진=탁경륜 기자 ta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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