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병든 한국 정치와 '이준석 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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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호 서울정치팀 부장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코 앞이다. 어정쩡한 전망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결과는 정해진 것 같다. 이번 전대는 ‘이준석 후보’로 시작해 ‘이준석 대표’로 끝날 것이다.

상당수 국민의힘 당원들은 ‘제1야당 대표 이준석’으로 인해 엄청난 불안감, 위기의식, 불쾌함을 느끼며 가시방석에 앉게 될 것이다.

野 당권주자들, 과거 정치문법 아직 못 벗어
이준석 앞에선 송영길도 22살 많은 아재뻘
부작용 걱정돼도 반드시 맞아야 되는 백신
통증 겪은 뒤엔 여야 모두에게 혁신의 계기

급진적이고 충동적인 발언, 검증되지 않은 정치력, 이미지를 빼면 보이지 않는 혁신적 콘텐츠, 독자적인 미래 비전의 부재 등등. 이준석이 당 대표가 돼선 안 될 이유만으로도 이 칼럼을 채우고 남을 정도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 길은 반드시 가야 한다.

코로나19가 걱정되면 백신을 맞아야 한다. 백신 접종 후 죽은 사람도 있고, 고열이나 근육통·피로감 등등 부작용은 기본이다. 하지만 완전한 면역체계를 위해서는 좀 아파야 한다.

이준석은 아무런 부작용 없는 완벽한 백신이 아니다. 문제는 국민의힘이 보수야당을 향한 ‘민심의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서는 고통이 따르고, 기분이 나빠도 이준석이라는 백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준석 열풍에 맞선 야당 당권 주자들의 행태가 그 이유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준다.

나경원(전 원내대표)은 이준석이 ‘유승민 대통령 만들기’에 나설 것이라며 불공정한 대선관리를 우려했다.

그런데 언제부터 나경원이 유승민을 그렇게 ‘위협적인’ 대선 주자로 생각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나경원은 대중성이나 정치력에서 유승민이 자신보다 한 수 아래인, 그래서 대권은 커녕 당권조차 맡기 힘든 허약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이준석 바람이 몰아치자 후진 정치의 산물인 ‘계파’ 논란에 불을 지폈다. 자신이 갖고 있던 내면의 인식까지 억지로 바꿔가며 이준석을 꺾으려 한 것이다.

주호영(전 원내대표)은 “에베레스트(대선)를 원정하려면 동네 뒷산만 다녀서는 안 되고 설악산이나 지리산 등 중간 산도 다녀보고 원정대장을 맡아야 한다”고 이준석의 짧은 경륜을 겨냥했다.

텃밭인 대구·경북(TK)에서 주호영이 ‘중간 산도 오르고 원정대장을 하는’ 동안, 이준석은 서울에서 3번이나 낙선했다.

한국 정당의 지역적 불균형을 잘 아는 주호영이 거리낌없이 이런 비유를 하는건 국민의힘이 영남을 벗어나지 못하는 여러 요인들 가운데 하나다. 당의 리더급 정치인이 이런 인식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국민의힘이 전국 정당으로 클 수 있나.

결국 나경원과 주호영은 계파 갈등, 지역적 편중 등 국민의힘이 이 모양 이 꼴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기막히게 끄집어내 자기 얼굴에 침을 뱉고 있다.

이준석 열풍이 여당에 미치는 파괴력도 엄청나다. 송영길(더불어민주당 대표)은 1963년생으로 올해 만 58세이다.

직전 당 대표인 이해찬, 이낙연(두 사람 모두 1952년생)에 비하면 무려 11세나 적은 나이로 지난 달 집권여당의 얼굴이 됐다.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어마무시한 세대교체를 이뤄낸 것이다. 하지만 ‘이준석 열풍’이 불자 송영길은 세대교체를 이룬 주역이 아니라 ‘세대교체의 대상’이 돼버렸다.

36세의 이준석과 맞닥뜨려야 할 58세의 송영길은 잘 봐줘야 큰 형이고, 그냥 아재뻘이다.

정권교체 펜데믹에 대처한답시고 송영길이라는 백신을 맞고 거리에 나섰더니, 이준석이라는 ‘변이 바이러스’ 앞에 무용지물이 돼버린 집권여당의 모습이다.

야당은 물론 여당의 변화까지 불러온 이준석 열풍. 고통이 따르고 부작용이 뻔하더라도 한국 정치의 선순환을 위한 성장통으로 이해한다면 당장의 아픔과 못마땅함을 참지 못할 이유가 없다.

얼마전 가깝게 지내는 지역의 정치인이 “이준석 바람이 서울에서도 강하냐?”고 물어왔다. 맞다고 했더니 이준석 휴대폰 번호 좀 알려달란다. 나경원이나 주호영이 당권에 유력했고, 그래서 그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물어봤다면 못이기는 척, 알려줬을 것이다.

이번엔 기자의 대답이 이랬다. “면식도 없는 사람이 갑자기 전화해서 응원한다고 이준석 같은 친구가 좋아할까요? 여론조사가 이렇게 나오는건 이제 국민의힘도 옛날 같은 정치 하지말라는 민심 같은데요” 그는 “나도 이제 정치하는 방법 좀 바꿔야겠네…”라고 멋쩍게 웃었다.

정답은 여기에 있다. 굳이 이준석을 응원하는건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이준석 열풍을 의식해야만 하는 분위기.

이준석이라는 상품성과는 별개로 한국 정치에 혁신적 변화가 다가오지 않을까.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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