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의 사람 사는 경제] 초대받지 않은 공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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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많은 영화에 함께 출연했고 실제로도 연인 사이였던 스펜스 트레이시와 캐서린 헵번은 20세기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꼽힌다. 흑인이 연기상을 받는 일을 상상도 할 수 없던 시절에, 시드니 포이티어는 흑인으로서 처음으로 아카데미에서 남우 조연상을 받은 배우다. 이 세 사람의 연기를 한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영화가 바로 <초대받지 않는 손님>이다. 맷은 진보적 성향의 잡지 편집장으로 평소에 인종 문제나 인권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기주장을 펼쳐 왔다. 주변에서도 그를 진보적 언론인으로 평가한다. 그런데 여행 중이던 딸 조이가 갑자기 남편감을 데리고 가겠다고 알려 온다. 어떤 사윗감일까 기대에 부푼 맷 부부 앞에 나타난 사람은 흑인 의사인 존이다. 당황한 맷은 그 분야의 고위직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존이 어떻게 의사시험에 합격했는지 묻는다. 친구는 10명을 선발하는 시험에서 존의 성적은 20등이었지만, 흑인을 한 명도 합격시키지 않을 경우 인종차별이라는 비난을 받을까 봐 합격시켰다고 이야기한다. 친구의 말을 들은 맷은 대뜸 그럴 줄 알았다고 반응한다. 물론 영화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맷은 자신의 도덕적 이중성을 인정하고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한다.

30대 0선 이준석 당대표 선출
공정과 경쟁을 언급하는 이 대표
학창시절 등수 다툼이 공정 언급

청년 할당, 지역 할당은 불공정
능력 부족은 소외자로 밀릴 수밖에




30대 0선 이준석 후보가 제1야당의 대표로 선출되었다. 설마 했던 일이 정말 일어난 것이다. TV를 틀면 채널을 가리지 않고 온통 이준석 대표에 관한 이야기뿐이다. 늘 말하는 것처럼 나는 정치 전문가가 아니니 여기에 대해서는 평가할 생각이 없다. 다만 이것이 언론의 호들갑만큼이나 별일인가 싶기는 하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이 대표의 생물학적인 나이 어림이 아니라 그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이 그만큼 젊은가 하는 일이다. 청년 정치인 이준석이 가장 자주 하는 이야기는 공정과 경쟁이다. 그리고 이준석을 지지하거나 공감하는 이들의 대부분도 바로 그 공정 때문에 이준석을 지지하고 공감한다. 그런데 이준석의 공정은 과연 어떤 공정일까? 이준석은 중학생 시절 700명의 학생들이 등수를 두고 다툰 것이 가장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었다고 말한다. 대표가 되자마자 처음 내놓은 정책도 앞으로 모든 공직 후보는 시험으로 선발하겠다고 한다. 결국 이준석이 생각하는 공정은 똑같은 책상에 앉아 똑같은 시험문제를 푸는 것이다. 교육도 정치도 단지 등수를 가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여기에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이 필요한가라거나 정치인에게는 어떤 자질이 요구되는가 따위의 고민은 없다. 아마 이준석에게 묻는다면 흑인을 배려하기 위해 10등인 백인을 불합격시키고 20등인 흑인을 합격시키는 일이야말로 철저하게 불공정한 일로 여겨질 것이다. 어쩌면 이준석을 지지하고 공감하는 많은 청년도 같은 생각일지 모르겠다. 이들이 모르는 것은 부모 덕에 싱가포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목동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걱정해 본 적 없는 백인이 10등 하는 일보다 주변에 제대로 학교를 다녀 본 사람이 거의 없는 빈민가에서 자라 자기 힘으로 생활비를 벌어가면서 의과대학을 다닌 흑인이 20등을 하는 일이 수천 배는 더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준석은 능력 있는 여성들, 능력 있는 청년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면 얼마든지 스스로 성공할 것이므로 청년 할당, 여성 할당, 지역 할당 같은 불공정한 배려는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꿔 말하면 능력 없는 청년들, 능력 없는 여성들은 도태되고 우리 사회의 소외자로 떠밀려도 당연하다는 뜻이다. 내가 안타깝게 여기는 일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가 없이는 우리 사회의 보통시민이 될 기회조차 가지기 어려운 청년들이 자신들을 지금의 소외된 처지로 내모는 불공정한 경쟁을 공정이라고 여기고, 오히려 그런 배려들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조하는 이 기막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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