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돈 치매 증상”… 형량 줄이기 포석? 양형엔 영향 못 줄 듯(종합)

김한수 기자 hangang@ ,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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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에서 직원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2차 결심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21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에서 직원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2차 결심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법정에서 치매를 주장하고 나섰다. 형량을 줄이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인데, 이와 별개로 오 전 시장이 재직 당시 치매를 의심할 만한 상황이었다는 증언이 쏟아진다.

21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강제추행 등의 혐의를 물어 오 전 시장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그러자 오 전 시장 변호인단은 공소 사실을 부인하며 상당한 시간을 들여 피고인의 건강 상태를 언급했다.

변호인, 법정서 병력 언급

시청 간부들도 ‘치매’ 의심

“치매 노인 시장 공천했나”

피해자, 입장문 내고 비난

오 전 시장의 변호인은 “피고인은 만 73세이며 암 때문에 위와 신장을 절제했다”며 “심신이 탈진된 상태에서 업무가 가중됐고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고 호소했다. 변호인단은 “오 전 시장이 치매 증상을 보인다”고 밝혔다. 오 전 시장이 추행 사건 이후 의료진을 만났고, 그 결과 가벼운 인지 장애와 상세 불명 치매 등을 진단받았다는 것이다.

부산시청 안팎에서는 오거돈 전 시장이 이미 시장 재임 시절부터 치매 전조 증상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사람에 대한 인지 문제와 주제와 동떨어진 연설, 과도한 용어 실수 등으로 시청 공무원 등 주변을 당황하게 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복수의 부산시 고위 공무원들은 ‘여러 차례 보고를 갔지만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보고한 내용을 제대로 이해조차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시장 치매설’이 시청 내부에 돌기 시작하자 주요 보고 대부분이 박태수 특보에게 몰렸고, 시청 업무의 병목 현상이 심했다는 후문이다.

2019년 경제 관련 행사에 참석한 오 전 시장이 인사말 과정에 행사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한참 해 공무원 등 참석자들이 진땀을 흘리게 했다. 또 당시 행사 장소를 잘못 말하거나 건물 이름을 잇달아 틀리게 말해 주변을 당혹스럽게 했다. 한 공무원은 “오 전 시장 재임 시절 시청 안팎에서는 오 전 시장의 ‘총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았다”며 “이번에 변호인이 치매 증상을 언급했다면 재임시절부터 그 전조 증상이 있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형에 영향을 주기 위해 내밀한 신변까지 털어놓은 것으로 보이지만, 오 전 시장측의 전략이 선고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심신미약에 대한 구분이 엄해지는 데다 정신적인 문제가 심각하지 않는 한 양형에 인정되지 않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부산대 의전원 교수를 역임한 국립부곡병원 정영인 원장은 “노화로 인한 기억력 약화와 치매는 엄연히 구분해야 한다”며 “특정 사건이 떠오르지 않거나 자주 깜빡하는 일이 일어난다고 해서 모두 치매는 아니며 전문의의 정확한 검사 후에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도 범죄를 저지를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던 것이 아니라 평소 치매 증상이 있었다는 변론으로는 파격적인 양형을 받기 어렵다고 본다. 익명을 요청한 부산의 한 변호사는 “치매 언급은 재판부에 ‘건강상의 사유가 안 좋은 걸 양해해 달라’라고 부탁한 정도로 받아들이는 게 맞다”며 “변호인단도 알고 있을 테지만 조금이라도 양형을 덜 받기 위해 이 같은 말을 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반면 이날 오 전 시장 측의 변론은 되레 피해자와 시민의 공분을 샀다.

추행 사건의 피해자는 오 전 시장 측 변론이 있은 이날 오후 입장문을 통해 “사건 직전까지도 팔굽혀펴기로 체력을 과시하더니 사건 후에는 갑자기 치매에 걸렸느냐”며 “당신의 주장은 350만 부산시민들의 수장인 시장이 치매 노인이었고, 민주당에서는 치매 노인을 대한민국 제2의 도시 시장직에 공천했다는 의미”라고 꼬집었다.

오 전 시장의 치매 고백은 시정 공백을 겪고, 막대한 선거 비용이 투입되는 걸 본 시민들의 분노를 다시 샀다. 안일규 부산경남미래정책 사무처장은 “오 전 시장이 공직자로서 책임감 있는 자세를 보여주려 했으면 이 같은 논리는 결코 내세우지 않았을 것”이라며 “성추행 파문으로 충격에 빠졌던 부산시민들에게 결국 허탈감만 안겨줬다”고 질책했다.

권상국·김한수 기자 ksk@busan.com


김한수 기자 hangang@ ,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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