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이준석과 윤석열의 불안한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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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훈 서울정치팀장

정치권 돌풍의 주인공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지난주 대면 인터뷰를 했다. 이 대표와의 인터뷰에는 사전 질문지도, 오프 더 레코드(보도 금지) 요청도 없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그 패기와 자신감에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의구심도 들었다. 지역 언론의 정치인 인터뷰 포인트는 이 대표가 주로 상대하는 수도권 언론과는 조금 다른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 현안들은 사전 정보 없이 평소 실력으로 답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문답을 주고 받으니 이 대표의 지역에 대한 이해는 다소 피상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일례로 이 대표는 부산·울산·경남(PK)의 최대 현안인 가덕신공항에 대해 이번 대선에서 그 역할과 적정 규모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가덕신공항은 현재 활주로 1개, 김해국제공항 존치를 전제로 정부의 사전타당성 연구용역이 진행 중이다. 이 대표의 말대로 하자면 지금 진행 중인 절차를 되돌려야 한다. 그러면 2030 부산월드엑스포 이전 개항이라는 목표 역시 불가능해진다. 물론 이 대표의 취지는 “가덕신공항을 지을 거면 제대로 짓자”는 것이지만, 해당 발언의 함의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듯했다. 지방 소멸 문제의 해법을 묻자 비교 우위의 신산업을 육성해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는 다분히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野 핵심 인사들 피상적인 ‘지역’ 인식
대선 이슈 중 후순위로 다룰까 우려
수도권 팽창·지역 소멸 절체절명 과제
이번 대선에서 핵심 어젠더로 다뤄야

이 대표가 지역 현안에 대해 다소 숙지가 덜 된 상황에서도 즉문즉답식 인터뷰에 나선 것은 그 나름의 원칙을 따른 것이겠지만, 근저에는 지역에 대한 평소의 인식이 반영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지역 문제는 그야말로 지엽적인 문제라는 인식 말이다. 사실 이 대표가 지향하는 ‘능력주의’를 둘러싼 논쟁을 지켜볼 때부터 내내 드는 불안감이었다. 자생력이 없어 중앙 정부의 시혜적 조치에 의존하는 지역은 능력주의의 사다리 맨 아래 위치해 있지 않을까? 여성할당제를 불공정으로 보는 이 대표에게 지역균형선발 제도 역시 공정 경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 않을까? 공정 경쟁의 형식만 강조하면 원래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의 ‘독식’을 정당화할 수 있는데, 수도권과 지역의 문제가 그렇다. 현재는 수익이 다소 불투명해 보이더라도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지역에 과감한 인프라 투자를 하는 걸 ‘자원 낭비’, ‘퍼주기’로 치부하는 수도권의 시각과 능력주의가 달라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면 너무 나간 걸까? 그렇길 바란다.

이번 주 대선 레이스의 막이 올랐다. 여당 주자들은 경선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고, 야당은 당 밖의 유력 주자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흘 동안 전개된 다양한 대선 이벤트 중 하이라이트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출마 선언이었다. 그에게 쏠린 여론의 시선은 9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의 무게추가 현재 어디로 기울어있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그러나 윤 전 총장의 출사표는 정치 초년생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적잖은 아쉬움을 남겼다. 윤 전 총장이 직접 쓰고, 수차례 퇴고 했다는 출사표의 대부분은 자신이 몸담았던 문재인 정부에 대한 격렬한 비판이었다. “국민 약탈”, “기만과 거짓 선동”, “부패 완판” 등 시중의 분노를 날 것 그대로 담은 출마 선언문에 야당 지지자들의 속이야 시원했을지 몰라도 ‘닥치고 정권교체’ 이후 윤석열이 그리는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고민은 얕아 보였다. 물론 윤 전 총장에게 대선 레이스는 이제 시작이고, 이제부터 민생 탐방으로 부족한 정책 역량을 보완하겠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윤 전 총장이 앞으로 채워나가야 할 비전과 정책 리스트에 빠져 있는 한 가지를 보태자면 그건 바로 지역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총장직 사퇴 이후 그의 행보, 출사표까지 그 어디에도 그런 언급이나 관심을 찾기가 어려워서다. 캠프 구성도 중앙 정부와 수도권 언론 출신 일색이라는 점도 우려를 더한다. 제1 야당 대표와 야권의 유력 대권 주자가 수도권 집중과 지역 소멸 문제를 변방의 이슈로 여긴다면 지역으로서는 몹시 실망스런 일이다.

사실 국민의힘과 그 전신 정당들은 이전부터 이 문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행정수도 이전과 공공기관 이전을 국가적 과제로 추진한 이후 분권과 균형발전이 여권의 정치적 카드로 인식돼온 측면이 컸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수도권 인구가 우리나라 총인구의 절반을 넘어섰고, 최근 집값 급등에 따른 자산 가치의 양극화로 수도권과 지방의 경제력 격차는 더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대로 가면 국토 면적의 90%를 차지하는 비수도권은 황폐화의 길을 면키 어렵다. 여야를 떠나 국가를 경영하려는 정당과 정치 지도자라면 이 문제를 어설프게 비켜가려 해선 안 된다. 여권이 지금껏 추진한 정책이 정답이 아니라면 야권은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대안을 내놔야 한다. 이번 대선의 중심 어젠더는 단연코 지역이 돼야 한다. 야권의 분발을 촉구한다.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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