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건희 기증관 후폭풍, 비수도권 건립이 민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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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의 ‘문화 불균형 정책’에 비수도권 지자체들이 “지역 무시와 오만 행정의 극치”라고 항의하면서 한데 뭉치고 있다. 서울 부지 2곳을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이건희 기증관)’ 후보지로 발표한 후폭풍으로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접근성, 국민의 문화적 향유, 서울의 보존·전시 경험과 인력” 등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황희의 변명을 듣고 있으면 그가 국가 전체의 문화 정책 담당 장관인지, 서울시청 대변인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다. 이는 지난 6일 국무회의에서 ‘자치분권과 국가 균형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

전국 지자체장 집단행동도 불사 태세
문화 격차 심화 우려, 결정 철회해야

이건희 기증관 유치전에 뛰어들었던 부산, 대구 등 전국 40여 개 지방자치단체들은 “지역균형발전 정책과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면서 반발하고 나섰다. 청사 부지를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던 홍순헌 해운대구청장은 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문체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시 예산 2500억 원으로 ‘이건희 헤리티지 센터’를 짓겠다고 약속했던 권영진 대구시장은 “지역 성장과 국가 균형발전을 기대했던 비수도권의 염원이 무참히 꺾였다”라며 집단행동을 예고했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도 페이스북을 통해 “서울공화국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망치고 헌법정신에도 어긋남을 모르냐”고 비판했다. 창원, 세종 등 전국 지자체와 국회의원, 미술단체의 한결같은 메시지는 “수용할 수 없다”이다.

이건희 기증관 후보지를 서울로 미리 정해 놓고 짜 맞춘 정황도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에는 지역 출신은 거의 참여하지 못했다. 위원회 구성 이전인 5월 24일 황 장관은 인터뷰에서 ‘수도권 유력’을 이미 언급했고, 서울시에 부지와 관련된 문의를 한 논란까지 벌어지고 있다. “국익을 생각했다”는 문체부의 기자회견은 지역의 의견을 들을 의사조차 없이 ‘예정된 수순’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했다. 위원회 구성부터 후보지 결정에 장관의 의도가 들어간 정황이 발견된다면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될 소지조차 배제하기 어렵다.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이건희 기증관이 서울에 건립되면 전체 80%의 국립미술관이 수도권에 들어서게 된다.

이건희 기증관의 비수도권 건립은 민심이다. “공모했다면 행정력 등 여러 비용, 공모 기간 치열한 경쟁 등이 있고, 탈락했을 때 허탈감이 더 클 것”이라는 황 장관의 말은 지방정부와 비수도권 국민을 하찮게 보는 서울공화국주의자의 시각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황희 문체부 장관은 국가 미래를 망치는 이번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한다. 단 한 번의 공정한 의견 수렴 절차도 없이 지역 간 문화 격차와 국정 혼란만 키우는 이번 결정은 당연히 철회해야 한다. 국가 균형발전과 문화분권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대한민국은 서울밖에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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