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놀이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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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 골목과 공터는 온통 아이들 노는 소리로 가득 찼다. 지금처럼 디지털 기기가 없던 시대 얘기다. 집 밖에 나가면 동네 친구들이 있었고 놀거리가 수두룩했다. 비석치기, 사방치기, 땅따먹기, 말뚝박기, 딱지치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자치기, 팽이치기, 술래잡기, 구슬치기, 제기차기, 숨바꼭질, 다방구, 묵찌빠, 닭싸움, 실뜨기, 소꿉놀이,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그 많던 놀이들을 열거하자니 벅찰 정도다. 지역마다 놀이의 명칭도 다르고 방식도 달랐지만, 혼을 빼는 재미 하나만은 한결같아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놀이하는 인간’에서 인류의 미래를 본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 같은 개념을 굳이 꺼낼 필요가 있을까. 모든 문화현상의 기원에는 놀이가 있다. 아니, 인간의 공동체 자체가 이미 놀이의 성격을 지닌다. 놀이는 단순한 시간 낭비가 아니라 정신적인 창조 활동이요, 일상과 생산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이런 통찰은 놀이하는 아이들을 보면 금방 깨달을 수 있다. 놀이 속에서 아이들은 모든 걸 잊은 채 곧바로 몰입한다. 거기서 자발성과 주도성을 배우고 상상력을 키우며 성취감까지 맛본다. 이는 경쟁력 있는 미래 교육의 핵심과도 연관되는 문제다. 요즘 아이들이 놀기 싫어한다거나 놀 줄 모른다고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최근 한국산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인 ‘오징어 게임’이 화제다. 지난 26일 기준으로 전 세계 76개국에서 가장 많이 본 넷플릭스 시리즈 1위에 올라 지구촌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중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오징어 게임은 어린 시절에 많이 했던 추억의 놀이 중 하나다. 부산·경남에서는 ‘오징어 달구지’라 불렀고 대구·경북은 ‘오징어 가생이’, 충청도는 ‘오징어 잡치기’였다. ‘오징어 땅콩’이라는 이름도 있다. 여하튼 비정한 자본주의 세상을 풍자한 이 드라마 덕분에 한국의 놀이문화가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드라마의 강한 흡인력에도 불구하고 잔혹한 장면 때문에 보는 내내 불편을 호소한 시청자도 적지 않다. 한국의 놀이문화가 사람이 죽어 나가는 부정적이고 선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다. 물질 만능 사회의 병폐를 드러내는 수단이 아이들과 놀이가 지닌 순수성마저 훼손하는 방식이라니. 어린 시절의 아이를 가슴에 품고 사는 어른들의 동심이 받는 충격, 드라마를 둘러싼 그 모든 논란의 생산까지 겨냥하고 의도했다는 뜻인가. 찜찜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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