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박찬욱 “하찮은 것들이 주인공 대접받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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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로 부산을 찾은 박찬욱 감독이 자신의 사진전 ‘너의 표정’에서 전시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박찬욱 ‘Face 16’과 ‘Washington, D.C.’(왼쪽부터 시계 방향). 김경현 기자 view@·국제갤러리 제공

부산국제영화제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올해 영화제 기간 부산에서는 ‘사진작가 박찬욱’을 만날 수 있다. 박찬욱 사진전 ‘너의 표정’이 부산 수영구 망미동 F1963 내에 위치한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1일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거장 영화감독 박찬욱이 아닌 열정적 사진작가 박찬욱을 만나는 자리로, 그의 첫 갤러리 개인전이다. 전시는 12월 19일까지 진행된다. 박찬욱 감독은 전시 개막 기자간담회에서 “오늘만큼은 사진하는 사람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국제갤러리 부산서 첫 개인전
“시간 한계 벗어난 사진 매력
영화보다 더 오래 작업할 터”

■“사물에도 감정 느껴지는 표정 발견”

사진작가 박찬욱은 대학 때부터 사진을 찍었다. 그는 “감독으로서의 정체성, 영화인으로서의 정체성도 있지만 스스로는 사진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따로 가지고 있다고 느끼며 살아왔다”고 말했다. 박 작가는 카메라를 흑백용, 컬러용으로 두 대씩 들고 다닌다. 보통 피사체에 맞춰 찍지만, 사막을 컬러로 찍었는데 질감을 더 드러내고 싶으면 흑백 전용 디지털카메라로 다시 찍는 식의 작업도 한다. “똑딱이 카메라를 쓰기도 하는데 똑딱이도 두 개가 필요합니다.”

열심히 사진을 찍는 이유에 대해 박 작가는 ‘여행을 별로 안 좋아하는 성격’ 이야기를 꺼냈다. “직업적으로 어쩔 수 없이 여행하고 호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사진 찍기는) 하기 싫은 일 속에서 어떻게든 보람을 찾아보려는 몸부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느 도시를 가면 하루나 이틀 정도는 시간을 빼달라고 요청을 해서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습니다.”

전시 제목 ‘너의 표정’은 사물에도 감정이 느껴지는 표정이라는 것이 발견될 때가 있음에 착안했다. 동명의 사진집 <너의 표정>(을유문화사)에 실린 작품 중 전시 형태로 보여주고 싶은 30여 점을 선별했다. 모로코 호텔 수영장에 모아둔 유령 같은 파라솔, 박 작가의 파주 집 근처에서 발견한 마네킹 허수아비 등 전시장에 걸린 사진 속 피사체들이 마치 ‘내가 주인공’이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것 같다. 박 작가는 이에 대해 “그럴 자격이 없어 보이는 하찮은 것들이 주인공으로 대접받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박 작가는 심도를 얕게 해서 갈라진 비누 표면의 질감에 시선이 쏠리도록 하거나, 촬영 각도를 조절해 보잘것없는 물건들을 사진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메인 포스터에 사용한 나무 사진도 그리스에서 ‘리틀 드러머 걸’을 찍기 위해 로케이션 스카우팅을 하다 발견한 나무를 찍은 것이다. “파란 하늘은 정오의 색깔인데 나무에 닿는 햇빛은 노을 지기 직전의 색깔이라 대비가 좋았습니다. (나무를) 존중하는 기분으로 카메라를 낮춰서 하늘을 배경으로 찍어 봤습니다.”

박 작가는 전체적인 조화 때문에 전시장에 걸지 못했지만 시멘트 블록 벽을 찍은 사진과 남해 폐건물을 찍은 사진도 좋아한다고 했다. 남해 폐건물 사진은 현재 후반 작업 중인 영화 ‘헤어질 결심’ 촬영장 근처에서 찍은 것으로, 이 영화 대부분이 부산에서 촬영됐다. “촬영 중 잠깐 화장실을 가다 발견해서 다시 카메라를 가져와서 찍은 사진입니다. 후줄근하고 초라한 사물을 통해 관객 마음에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저기서 누가 살았을까, 저 강아지는 뭘 하고 있을까 등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는 사진입니다.”



■“사진의 단순성이 복잡성 만들어”

발리에서 신에게 바치는 공물, 워싱턴 D.C. 뮤지엄에서 GV 대기시간에 찍은 소파 사진 등은 ‘영화감독 박찬욱’을 연상시키는 색감으로도 시선을 끈다. “영화 만들 때 마지막에 색 보정을 하는데, 디테일을 많이 만지는 편이라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려요. 특별히 좋아하는 색은 없고 그냥 그 상황에 어울리는 색이 뭐냐가 중요하죠. 저 사진에 저 색이 어울리는 것이죠.”

영화와 사진, 그에게 두 작업은 어떻게 같고 다를까? “같은 점은 역시 프레이밍을 한다는 거죠. 다른 점은 영화는 시간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이미지라는 점, 시간 속에서 움직이기에 딱 그 시간만큼 느끼게 됩니다. 사진은 순간이 고정되어 있어서 오히려 시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느낌을 줍니다.” 언젠가 한국의 절 시리즈를 발표하려고 절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다는 박 작가는 “영화보다 사진을 먼저 시작했고, 영화보다 사진을 더 늦게까지 할 것”이라고 했다.

영화감독 박찬욱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비프 행사와 마켓 콘퍼런스에 참석한다. “제가 부산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여러 번 많이 했지만, 나이가 들어서 영화 작업을 못 하게 되거나 부산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면 부산에서 살고 싶어요. 부산에서 사진작가로 데뷔하는 것도 뜻깊고, 동시에 영화감독으로서 관객과 만날 수 있어서 올가을 부산은 못 잊을 것 같습니다.”

오금아 기자 ch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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