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말들의 잔치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이종민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대표

선거철이 되면, 말과 말의 해석들이 꼬리를 물고 세상에 떠돈다. 그것들은 점점 세기를 불려 우레와 같이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하고, 방귀 새듯 슬며시 사라지기도 한다. 때로 어떤 말들은 순식간에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되고, 블랙홀처럼 세간의 이목을 빨아들이기도 한다. 정치인들의 말들이 이때만큼 위력을 발휘할 때가 있을까? 글에 비해 말의 속성은 즉흥적이고 정제되지 않기 십상이어서 폐해는 예상외로 심각하다. 더군다나 정치인들의 즉흥적인 말은.

통치자·행정가들이 쏟아 낸 말
바로 지침·법령 통해 현실화
 
졸속한 법령과 근거 없는 정책들
서로 충돌해 사회에 혼란 야기
 
전문적 검토 거쳐야 완전을 담보
말은 언제나 무거움을 지녀야

어느 대통령이 비행기에서 마을의 지붕을 보고 내뱉은 말, “지붕이 왜 저리 칙칙해. 밝은색으로 칠하면 안 돼?”와 같은 말은 실로 힘이 컸다. 전국의 지붕을 슬레이트로 교체하는 운동으로 이어졌고, 페인트 회사들이 떼돈을 벌었다. 이후 일은 엉뚱한 데에서 생겼다. 발암 물질로 된 지붕을 걷어내는 데에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급한 것은 오히려 작은 문제, 더 큰 문제는 국민의 정서가 매우 자극적인 것으로 바뀌었다는 데에 있었다. 이후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집을 그려 보라 하면, 으레 붉고 푸른 원색을 칠하고 있었으니 말의 후유증이 국민의 미감에 미친 영향은 심각했다.

세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건축은 제나라의 고유색과 재료, 그리고 질감으로 건축되고 유지되고 있다. 기와며, 벽돌이며, 나무며, 심지어는 흙에 이르기까지. 재료들이 진부하고 현대적이지 못하다 여겨지면, 최소한 그것들의 이미지 내지는 물성을 첨단의 디자인에 자연스레 접목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건축은 아무리 낡았다 하더라도 유산이 되며, 때론 관광자원이 돼 돈을 벌어들이기도 한다. 그 사태로 우리는 우리 고유의 색과 질감을 잃었으니 심각하다 할 수밖에.

통치자와 행정가들이 사태에 직면해 쏟아낸 말들은 곧 바로 지침이나 법령을 통해 현실화 된다. 잠시 위기를 넘기는 듯하지만, 채 일 년이 안 돼 이러한 지침들과 졸속한 법령들은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다른 사례로, 어느 대통령이 주장하던 에너지 절감의 유일한 해결책이던 건축물 외단열 방식은 화재에 취약해 한참 뒤에 금지될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그때가 되어서야 궁여지책으로 대체된 졸속 공법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기도 하나, 연구된 근거가 없는 정책과 공법은 사후 조치에 대해 속수무책이다. 대통령의 말과 졸속 제정된 법령과 과학이 질서 없이 충돌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멘붕’ 상태가 된다고나 할까?

법은 수정되고 보완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체계와 흐름을 가지고 하나의 생명체처럼 다루어야 한다. 거기엔 전문가들의 의견이 따라야 함은 물론이고, 나아가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시간이 걸리므로 생기는 안타까움일랑 감내해야 한다. 그럼에도 통치자의 말이 즉시 법이 되었다는 것은 사회가 성숙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것이 문화로 귀결될 것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특히 요즈음 같이 선거철이 되면 말은 쉽게 문자화되고, 이른바 공약이란 말로 세상에 얼굴을 내민다. 졸속한 공약들의 가벼움은 마치 코미디처럼 희화되기도 한다. “공약에 저작권이 있습니까?”, “내 공약을 가져다 쓰세요”와 같은 말들이 휴지가 바람에 날리듯 어지럽게 난무하고 있다.

말의 가벼움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정치가 난무하는 시절일수록 정치인들의 말은 더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 정치인들이 특정 분야에 전문적이 않다 하여 무엇이 문제가 될까? 입이 근질근질하더라도 전문적인 것은 전문가의 몫으로 넘기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정치인과 행정가들의 말은 전문적 검토를 거쳐 최종적인 것이어야 완전을 담보한다. 그리고 그 말은 언제나 무거움을 지녀야 한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