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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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마선 사회부장

“그 사람, 사이비 기자 아니야?” 2000년 아내가 남자친구의 존재를 처음 알렸을 때 절친의 반응이었다고 한다. 이듬해 결혼한 것으로 미뤄 기자에 대한 그 친구의 거부반응은 그다지 심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겉은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다르다’는 사이비(似而非)라는 말 속에 답은 나와 있다. 기자로서 처신만 똑바로 한다면 배우자로 마다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어느덧 20년이 흘렀다. 만약 아내가 그 세월만큼 젊어진다면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을까. 아마 이런 반응 아닐까 싶다. “니 미쳤나. 기레기랑 사귄다는 말이가?” 기자 생활을 오래하면 욕 먹는 데 내성이 생긴다. 그래도 기자가 도매금으로 ‘쓰레기’ 취급받는 것이 여러모로 사회에 좋을 것 같지 않아 몇 마디 보태볼까 한다.


언론중재법 둘러싸고 갈등 극심
언론특위에서 연말까지 논의키로

사회적 갈등 부추기는 한국 언론
‘bridge the gap’ 되새겼으면

‘기레기’ 비난만으로 변화 어려워
언론 역할 존중하며 건강한 비판을


언론중재법 논란이 한창이던 올 8월 말, 사회부 부원 둘이 칼럼을 썼다. 기자 입장에서 법안의 문제점을 짚은 것이었다. 칼럼 내용 못지 않게 궁금했던 것이 반응이었다. 후배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댓글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우를 범했던 보도’는 눈에 보이지 않느냐고 다그쳤다. 단순 정보만 전달하는 AI(인공지능) 기자만 남을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차라리 AI가 낫다고 조롱했다. 골이 참 깊었다. 언론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비판은 과연 정당한가.

기자인 덕분에 2014~2015년 미국 연수를 다녀왔다. 기억에 남는 것이 저널리즘 수업 때 원로 교수가 했던 말이다. “오보의 자유도 보장하는 것이 진정한 언론자유다.” 이 말은 기자가 오보를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미국에도 오보에 대한 벌은 분명히 있다. 언론자유에 대한 믿음과 민주주의 종주국이라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반론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들의 논리는 대략 이렇다. 어차피 잘못된 보도는 ‘사상의 자유시장(marketplace of ideas)’에서 자연스레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거짓말쟁이 ‘양치기 소년’이 좋은 예다. 보도를 막기 위해 소송을 남발할 경우 ‘움츠림 효과’(chilling effect)가 날 수 있다. 물론 오보가 바로잡힐 때까지 시간과 고통이 따를 것이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비용이다. 그 비용은 언론이 제 구실을 못해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보다 훨씬 적다고 본다.

생각은 반대로도 미쳤다. 우군이 많은 그 나라 언론의 비결은 뭘까. 미국이라는 나라가 정부(영국)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했고, 그 과정에 ‘표현의 자유’를 앞세운 언론·출판의 역할이 컸던 역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언론들이 쌓았던 신뢰를 빼놓고는 설명이 힘들다. 이해가 충돌하고, 시비가 뜨겁지만 언론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는 있는 듯하다.

연수 중 언론의 역할과 관련해 마음에 새긴 표현이 있다. ‘Bridge the gap’. 직역하면 틈에 다리를 놓는다는 것인데, 공동체에서의 차이를 메운다는 뜻이다. 한국 언론은 이 역할에 충실할까. ‘갈등 부추기는 언론’.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내는 ‘신문과방송’ 9월호 커버스토리다. 세대, 젠더, 정치 등에서 편견을 만들고, 논란을 부추기는 한국 언론의 고질병을 꼬집었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지난달 29일 여야가 언론제도개선특위를 연말까지 운영하기로 합의했다. 언론단체도 피해자 구제, 팩트체크 강화 등을 논의한다. 언론은 사회적 갈등을 풀고 공동체를 고민하는 틀이다. 언론의 쓸모와 자구노력을 국민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것 또한 언론이 할 일이다.

다시 댓글을 읽어본다. 악의적인 기사가 이번 일을 불렀다? 악의성은 팩트 자체의 정확성보다는 팩트의 취사선택, 즉 공정성의 영역에 가깝다. 기득권 유지를 위해 법에 반대한다? 언론자유는 기자와 언론사를 위한 것이 아니다. 언론이 자유롭지 않다면 그 피해는 국민이 본다. 이 법 때문에 위축된다면 진짜 기자가 아니다? 기자도 사람이다. 추가 비판 보도를 막기 위한 소송(손해배상·명예훼손)이 지금도 심심찮다. AI 기자가 낫다? ‘인간 기자’의 눈부신 특종을 일일이 꼽기도 힘들다. 언론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다? 여론의 견제를 가장 많이 받는 곳이 언론이다. 댓글이 그 증거다.

올해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되었다. 유엔무역개발회의가 우리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격상한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 사회는 선진적일까. 경제적 양극화 못지않게 사회적 양극화도 골칫거리다. 차이를 존중하고 격차를 줄이는 데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언론특위에서 건강한 논의가 이뤄지길 바란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레기라는 비난만으로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순간에도 많은 기자들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은폐, 저항, 회유와 싸우면서 뛰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 이것은 팩트다. m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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