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맞서 숲 지키자’… ‘李山표석’ 해운대 장산서 무더기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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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구 장산과 주변 산지에서 발견된 ‘이산표석(李山標石)’이 총 130여 개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에 땅을 뺏기지 않기 위해 세운 표석으로 추정되는데, 대량으로 발견된 만큼 보존과 활용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해운대구청은 지난달 30일 ‘장산 산림 문화자산(이산표석) 스토리텔링 조사 연구용역’을 마무리했다고 20일 밝혔다. 이산표석 유래와 권역별 현황, 주변 역사유적과 자연 자원 등이 246p 분량 책자에 이야기 형식으로 정리됐다. 연구는 해운대문화원이 올해 4월부터 약 6개월간 1800만 원을 들여 진행했고, 옥숙표 장산습지보존위원장 등이 조사와 스토리텔링을 맡았다.

총독부 ‘주인 없는 산’ 수탈
조선 왕실 소유 표시로 맞서
2001년 17개 첫 발견 이후
주변 산지 등 130여 개 찾아
해운대구청 “활용 방안 검토”

이산표석은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임야 수탈에 맞서 장산 일대를 뺏기지 않기 위해 세운 표석으로 추정된다. 당시 주인이 없는 산은 조선총독부에 귀속됐기에 조선 왕실 이 씨 소유 산이라고 알리려 했다는 게 정설이다. 주영택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장이 2001년 장산과 아홉산에서 17개를 처음 발견했고, 그 중 하나는 부산박물관으로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 이산표석은 충남 예산 등에서도 발견됐지만, 장산 일대처럼 무더기로 발견된 곳은 없다.

해운대문화원은 장산뿐만 아니라 운봉산, 아홉산 일대에 발견된 이산표석이 총 130개 이상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조사를 맡은 옥 위원장은 장산 좌·중동 40개, 우동 20개, 반여·반송동 23개와 운봉산 일대 24개, 아홉산 27개 등 이달까지 총 134개까지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옥 위원장은 “지난해 연말에 70여 개를 새로 발견했는데 최근 수십 개를 더 찾았다”며 “훼손되거나 위치가 불분명한 표석도 24개 정도인데 총 300개까지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장산 일대는 조선시대 국가가 관리한 ‘봉산’인 데다 한동안 접근이 어려웠던 지역이라 이산표석이 무더기로 발견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산표석 덕분에 1918년 일제의 산림조사 때 주인 없는 산으로 분류된 장산이 추후 창덕궁 소유로 변경됐다는 분석도 있다.

정진택 해운대문화원 사무국장은 “장산은 세종 때부터 봉산으로 지정됐으며 판옥선을 만들거나 집을 짓기 위한 소나무가 자란 곳”이라며 “중요한 지역을 지키기 위해 상부 지시로 수군이나 백성이 무더기로 표석을 세운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1910년 한일합병 전부터 표석이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며 “장산은 해방 이후에도 한동안 접근이 어려웠던 데다 군부대까지 주둔하면서 훼손되거나 뽑힌 표석이 적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산표석이 조선 왕실이 아닌 보통 이 씨 문중 소유라고 표시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옥 위원장은 “국유지라고 알린 게 아니라 보통 이 씨 소유라고 표시해 땅을 뺏기지 않으려 했을 가능성도 크다”며 “좀 더 자세한 연구가 필요하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표석인 것은 확실하기에 체계적인 보존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해운대구청은 이산표석 보존과 활용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경수 해운대구청 장산구립공원팀장은 “특화 숲길을 조성하거나 청소년 교육자료로 활용하는 것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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