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에 안중근 강조한 ‘정의·인도·동포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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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영웅 안중근 / 전우용

“안중근은 시대를 뛰어넘는 선구적 사상을 정립한 대(大)사상가였다.”

<민족의 영웅 안중근>의 핵심적 주장이다. 안중근(1879~1910)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그는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한 지사에 머무는 게 아니라 세기를 앞선 실천적 선구자요 큰 사상가였다는 것이다. 1910년대에 이미 <안중근론>을 쓴 박은식은 “안중근은 세계적인 안광(眼光)을 갖고 스스로 평화의 대표를 자임한 것”이라고 했다.

미완의 책 ‘동양평화론’서 밝힌 3대 가치
“안중근은 시대 뛰어넘은 대사상가였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안중근이 감옥에서 쓴 미완의 ‘동양평화론’이다. “‘동양평화론’은 그가 인간의 구원과 평화를 바라는 신의 뜻을 기리며 지은 생각의 성전(聖殿)이었다.”(224쪽) 안중근은 천주교 신앙인이기도 했다.

그는 ‘동양평화론’에서 ‘대한독립’ ‘동양’ ‘만국공법’ ‘민족’ 등의 개념을 구사하면서 동양평화와 세계평화에 대한 생각을 정립했다. 이런 개념을 당시 10~20년밖에 되지 않은 신생 개념이었다. 예를 들면 ‘민족’이란 단어는 1900년에 등장했고, ‘독립’이란 단어도 1880년대 중반부터 사용됐다. 안중근의 삶은 중세와 근대에 걸쳐 있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근대와 현대를 관통했다는 것이다. 과연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오늘날 유럽연합을 만들어낸 유럽통합론과 흡사할 정도로 그 사상은 대단히 현대적이라는 거다.

저자는 묻는다. “학교라곤 다녀 본 적이 없는 안중근이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상을 정립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죽음을 앞두고 모든 사심을 버렸기에, 그의 생각은 어떤 잡스러운 것도 섞이지 않은 투명한 결정체가 되었다는 거다.

그 투명한 결정체가 이토를 명중시켰던 거다. 거사 당일 안중근은 하얼빈에서 여섯 발의 총알을 쐈다. 세 발은 이토에게, 다른 세 발은 이토 뒤쪽의 세 명에게 쐈다. 모두 명중했다. 홍콩의 한 신문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생명을 버리려는 마음을 가졌기에 그의 마음이 안정되었다. 마음이 안정되었기에 손이 안정되었다. 손이 안정되었기에 탄알마다 명중했다.”

안중근의 어머니도 대단했다. 아들이 거사로 잡혀 죽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큰일을 하였으니 목숨을 아끼지 말라. 깨끗이 죽음을 택하는 것이 이 어미의 희망이다”라고 했다. 안중근의 또래 벗, 동지는 백범 김구, 도산 안창호, 이동휘 등이었다고 한다.

안중근이 ‘동양평화론’에서 강조한 3대 가치는 정의 인도 동포애다. 그것은 기미독립선언서에 그대로 반영됐고, 대한민국 국민이 공유해야 할 핵심 가치로서 현재 헌법 전문에 그대로 씌어 있다. 안중근의 생각과 사상이 대한민국 국민들끼리의 약속인 헌법에 깊이 스며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안중근은 진보와 보수, 남한과 북한을 막론하고 모두가 기린다는 점에서 민족 통합의 상징이며, 한반도는 물론이고 일본 중국 러시아에서도 기린다는 점에서 한국 민족주의 상징이면서 동아시아 연대의 상징이라고 한다. 전우용 지음/한길사/648쪽/2만 4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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