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처벌법 시행 4개월… 경찰, 가이드라인조차 없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스토킹처벌법) 적용을 두고 경찰이 스토킹의 ‘지속성’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일(부산일보 2월 15일 자 10면 보도)이 벌어지면서 입법 취지를 살리고 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수사 기관의 노력이 요구된다. 스토킹 피해자들은 법 시행 4개월이 다 돼 가지만 여전히 경찰의 소극적인 대응과 증거 수집 과정의 2차 가해를 호소한다. 전문가들은 경찰이 자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일괄적으로 법 적용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최근 3개월간 일평균 신고 4.4건
이전보다 무려 7배나 증가해
처벌 의지·사회적 관심 반영
경찰, 1년 가까이 피해 있었지만
지속성 둘러싸고 자의석 해석 논란
피해자가 피해 수집·증명도 문제

17일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21일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지난해 11월부터 3개월간 총 407건의 스토킹 신고가 접수됐다. 일평균 4.4건꼴이다. 이는 지난해 1월부터 법 시행 전까지 일평균 신고 0.6건보다 7배나 증가한 수치다. 스토킹처벌법 시행으로 스토킹 범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고, 피해자들 역시 법 시행으로 가해자 처벌 수위가 높아지면서 적극적인 신고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스토킹에 대한 처벌은 과거 경범죄처벌법상 10만 원 이하 범칙금에서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대폭 강화됐다.

그러나 법 적용이 수사 당국의 자의적인 해석에 좌우될 수 있다는 점은 피해자들에게 여전한 불안 요소다. 스토킹처벌법은 처벌 대상을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스토킹을 저지르는 경우’로 규정하는데 경찰이 ‘지속적’ 또는 ‘반복적’이라는 문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범죄 성립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찰이 스토킹처벌법 이후 피해와 앞선 피해 사이에 시간 차가 있다는 이유로 ‘지속적’인 스토킹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해석)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A 씨는 지난해 12월 앞서 한 차례 경찰 진정 이후 연락이 뜸했던 B 씨가 9개월 만에 다시 일방적 연락을 해 오자 다시 경찰을 찾았다가 법 시행 전 1년 가까이 지속된 스토킹 피해를 인정하지 않는 경찰의 해석에 절망해야 했다. <부산일보> 보도 이후 경찰은 A 씨에게 피해자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사건을 처리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스토킹 피해를 오롯이 피해자가 수집하고 증명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한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통상적으로 스토킹 피해자는 연락을 피하고자 가해자의 연락을 ‘수신 거부’로 차단한다. 하지만 신고를 하려면 증거를 모으기 위해 경찰의 권유로 수신 거부를 해제하는 경우가 많다. A 씨 역시 경찰의 권유에 따라 수신 거부를 풀고 다시 연락을 받으며 두려움에 떨었고, SNS 메시지와 도용 사진 게시글 등 700건에 달하는 스토킹 피해 증거를 수집, 정리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수치심과 불안감을 느껴야 했다.

경찰의 소극적인 대응과 법적인 한계를 우려해 스토킹 피해를 당하고도 신고조차 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경기대 이수정 교수 연구팀이 지난해 12월 국회에 제출한 ‘스토킹 방지 입법정책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스토킹 피해자 256명 중 206명(80.5%)이 경찰에 스토킹 피해 사실을 신고하지 않았다. 그 이유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해 줄 것 같지 않아서’(27.6%), ‘사소한 일이라 생각돼서’(22.8%), ‘경찰이 심각하게 여기지 않을 것 같아서’(18.9%), ‘과거에 신고했을 때 소용이 없어서’(6.3%) 등을 꼽았다.

스토킹 신고를 한 피해자 중에서도 경찰의 조치에 만족하는 경우는 응답자 중 19.4%에 불과했다.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은 ‘가해자 행위를 제지하기 위해 경찰이 취할 수 있는 행위가 별로 없었다’ ‘경찰이 내 사건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경찰이 2차 가해를 했다’ 등을 언급했다.

법조계에서는 스토킹처벌법이 입법 취지에 맞게 적용되려면 사건 담당자마다 다른 관점으로 법을 적용하는 일이 없도록 경찰이 자체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일괄적으로 법 적용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피해자 중심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감수성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아울러 현행 스토킹처벌법이 가해자에 대한 통제와 인신 구속보다 피해자 관리에 방점이 찍혀 있는 만큼 피해자를 2차 피해와 보복범죄로부터 보호할 수 있도록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재원 변호사(법률사무소 시우)는 “일선 경찰서마다 해석도 천차만별이고 담당 형사가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일괄적인 법 적용이 가능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스토킹 피해를 피해자 중심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성현·나웅기 기자 kksh@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