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청와대 국민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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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종은 콤플렉스가 많은 왕이었다. 왕이 되기 위해 워낙에 많은 피를 뿌렸고, 왕이 된 이후에도 아버지(이성계) 등 가족과 극심한 불화를 겪은 탓이었다. 태종은 그런 자신을 백성들이 어떻게 볼까 노심초사하며 민심을 돌리려 애썼다. 조정에서도 왕의 고충을 간파하고 다양한 방책을 모색했다. 원억미신자(寃抑未伸者), 즉 원통하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백성의 하소연을 들어 주자는 아이디어는 그 하나였다.

태종 등극 1년 뒤인 1401년 7월 18일(음력) 전좌랑 박전 등이 “중국 송나라 태조가 등문고(登聞鼓)를 통해 여론을 살펴 칭송을 받았는데, 우리도 따라 하자”고 제안했다. 등문(登聞)이란 어떤 일을 왕에게 알린다는 뜻이다. 태종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10여 일 뒤엔 의정부가 구체적 안을 마련해 상소했다. 등문고는 마침내 설치됐는데, 등문이란 말이 왕을 직접 거론해 지나치다 하여 신문고(申聞鼓·사안을 상부에 알리는 북)라 바꿔 불렀다. 태종은 신문고를 진선지정(進善之旌)에 비유하며 흡족해했다. 진선지정은 중국 요 임금이 길가에 깃발(旌)을 세워 놓고 임금에게 진언할 자가 있으면 그 깃발 아래 서게 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태종은 스스로를 요 임금과 동격에 놓은 것이다.

신문고는 이후 여러 왕을 거치며 폐지와 재설치를 반복했다. 무고 같은 부작용도 많았으나 신문고가 지키려 한 요체는 ‘사리에 맞지 않아도 너그럽게 받아들인다’는 것이었다. 실제 적용에서는 달랐을지 몰라도, 여하튼 힘없는 이들의 하소연을 내치지 말고 보듬어 주자는 다짐인 셈이다.

‘현대판 신문고’로 불리던 청와대 국민청원이 지난 9일 문재인 정부 임기가 끝나면서 종료됐다.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며 2017년 8월 19일 개설된 이후 5억 1600만 명 이상 방문했고, 억울한 사연, 갖가지 정책 제안이 몰려들었다. “분노를 배출하는 하수구가 됐다”는 비판도 있지만 의견을 개진할 마땅한 곳이 없는 국민들의 호소를 받아 주는 역할을 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어쩌면 이런 청와대 국민청원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 모른다. 새 정부는 국민청원 기능을 확대해 새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하지만 기약이 없다. 나라를 올바로 유지하기 위해선 먼저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야 하는 법이다. “백성은 물이고 임금은 배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전복시킬 수도 있다.” 에 나오는 말이다. 무서운 말이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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