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의 추억… 필리핀 대선서 ‘철권통치’ 마르코스 아들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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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을 21년간 철권통치한 고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 페르디난도 봉봉 마르코스(64) 상원의원이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시민들의 ‘피플 파워’ 혁명으로 쫓겨났던 마르코스 가문이 36년 만에 부활한 셈이다. 9일과 10일 필리핀 곳곳에서는 마르코스 지지자들과 민주 활동가들의 환영과 규탄 집회가 각각 잇따랐다.

95% 개표서 2위에 배 이상 앞서
민주 활동가 등 “부정 선거” 반발
본보 기자와 통화 주부 크리스틴
“그의 리더십 믿고 미래를 선택”

필리핀 ABS-CBN 뉴스에 따르면 10일 오전 10시 기준(95% 개표 진행) 마르코스 전 상원의원은 3062만여 표를 획득해 2위인 레니 로브레도 부통령(1461만여 표)을 2배 이상으로 앞섰다. 총 유권자는 약 6750만 명이다. 7107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구성된 필리핀은 대선 개표와 검표 과정이 상당히 길다. 봉봉 마르코스의 아버지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1965년부터 1986년까지 장기집권하면서 부정 축재, 반대파 고문과 살해로 악명을 떨친 인물이다. 참다 못한 시민들이 1986년 ‘피플 파워’를 일으켜 항거하자 마르코스는 결국 하야했고 3년 후 망명지 하와이에서 사망했다. 이와 관련, 마르코스는 과거 문제에 대해서는 답변을 거부하며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젊은 층에 지지를 호소했다.

마르코스에게 투표를 한 주부 크리스틴(38)은 와의 통화에서 “아버지 마르코스 대통령 시절 필리핀은 일본, 미국 못지 않게 잘 사는 국가였다”면서 “과오가 있긴 하지만 정치 명문가 출신인 그가 경제는 물론 외교와 국방, 복지 분야에서도 정책을 잘 펼칠 것으로 믿는다. ‘다시 일어서자’는 그의 슬로건과 리더십을 믿고 필리핀의 미래에 투표했다”고 말했다. 이번 마르코스 대통령 당선에는 젊은 층의 강력한 지지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CNBC에 따르면 투표권을 가진 필리핀 국민 50% 이상이 18~41세 사이의 연령층이다.

기대와 함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특히 마르코스 치하의 암울한 과거와 권력형 비리를 이유로 반발해온 민주 활동가와 청년단체들은 “독재자 2세들이 썩은 투표 시스템을 활용해 부정선거로 당선됐다”며 거리 시위에 나섰다. 실제로 전자개표기 불량 의혹에 총기 난사 사건까지 이어지며 대선 이후 정국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마르코스가 취임하면 선친이 집권 당시 빼돌린 천문학적인 정부 재산을 환수하는 작업을 제대로 이행할지 여부도 관심사다. 고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은 지난 1986년 취임 직후 마르코스 일가의 재산 환수를 위해 바른정부위원회(PCGG)를 설치해 마르코스 일가를 상대로 1710억 페소(4조 원)를 환수했고, 현재 추가로 1250억 페소(3조 원)를 돌려받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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