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우연과 필연 사이를 걷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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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홍상수 감독의 ‘소설가의 영화’는 우연과 필연 사이를 걷는 영화다. 걷는 동안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고 영감을 얻고 사건이 발생한다. 그런데 우리는 인물이 걷는 풍경이 아니라 그녀가 잠시 멈추었을 때 만나는 대상에 집중한다. 그 순간 발생하는 침묵과 소리는 영화를 입체적으로 만든다. 주인공 ‘준희’는 유명 소설가지만 현재는 소설을 쓰지 못하는 인물로, 어느 날 잠적한 후배 ‘세원’을 만나기 위해 낯선 도시로 찾아온다.

작은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세원은 준희의 방문 이유가 궁금하지만 준희는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못한다.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기운이 감돌고, 서점에서 일하는 직원은 느닷없이 준희에게 수어를 알려준다. “날이 밝지만 곧 날이 저물 것 같다. 날이 저물기 전에 얼른 나가 놀자” 이 수어는 영화의 주제를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카메라는 무심히 이동할 뿐이다.

익숙한 이야기와 거리 두게 하는
홍상수 감독의 ‘소설가의 영화’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새로움
지금 보는 건 환상일까 실제일까



서점을 나온 준희는 동네에서 유명한 타워로 자리를 옮긴다. 그때 안면이 있는 영화감독 부부가 준희에게 아는 체 하지만 과거 불편한 일이 있었던 관계라 대화는 뚝뚝 끊기기 일쑤다.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자 누군가 산책을 제안하고 타워를 나선 그들은 산책 중인 여배우 ‘길수’를 만난다. 한때 활발히 활동했지만 지금은 일을 쉬고 있는 길수가 마음에 들었는지, 준희는 자신이 쓴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며 길수가 출연해달라는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두 사람은 운명처럼 다시 세원의 서점으로 돌아온다.

이처럼 영화는 소설을 쓰지 못하는 소설가가 영화감독이 되는 시간을 따르고 있다. 아마도 준희는 소설의 영감을 얻기 위해 낯선 동네를 여행하는 듯 보이지만 결과물은 쉬이 얻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준희의 이동(걷기)과 우연을 의미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 준희는 처음 만난 이에게 수어를 배우고, 사이가 좋지 않은 감독에게 망원경 사용법을 배우고, 우연히 만난 여배우에게 자신이 만들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달라고 청하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가의 시간은 멈춰있지만 예술가의 의지, 고군분투하는 예술가의 시간이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설가의 영화’는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로 이어지는 영화다. 그런데 이 우연은 일상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어 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우연의 겹침은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어딘지 모를 낯선 감정을 자각하게 만든다. 익숙한 거리도 낯설게 보이고 인물들마저 독특하게 느껴지는데, 이는 준희와 길수가 산책로를 빠져나와 분식집에서 점심을 먹는 장면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준희가 길수에게 영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에 분식집 창 너머로 한 소녀가 나타나 그녀들을 바라본다. 아무 말 없이 오래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소녀가 카메라에서 사라졌다가 또 다시 나타나 창 밖에 선다. 결국 길수는 소녀에게 가본다며 잠깐 동안 분식집을 나가고 준희는 홀로 남아 밥을 먹는다.

우리는 소녀가 왜 영화 속에 나타났는지 끝끝내 알 수 없고 짐작도 할 수 없다. 준희가 낯선 동네로 갑작스레 찾아온 이유를 알 수 없듯이 말이다. 하지만 소녀의 존재는 ‘소설가의 영화’를 새롭게 보게 만드는 또 하나의 ‘창’임은 분명하다. 감독의 의도로 소녀가 영화 속으로 들어온 것인지, 우연히 영화 속에 잠입한 인물이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건 영화(환상)인지, 실제인지를 질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의 다음 장면이 자연스레 이어질 거라 예상하던 지점에서 홍상수 감독은 멈추었으며, 익숙한 이야기와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 어떤 것도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영화가 바로 홍상수의 영화임을 보여준 것이다. 그의 영화가 언제나 새로울 수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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