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도읍성, 꽃밭에서 노닐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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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 아래 화사한 작약꽃밭
찻집 뒤에 숨겨진 아름다운 정원
시원한 성벽 올라 산책 한 바퀴
카페‧연못에서 느긋한 커피 한 잔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흘러가는 화사한 날씨가 잘 어울리는 여행지가 있다. 부산대구고속도로를 타고가면 대동IC에서 딱 45분 걸리는 곳이다. 경북 청도군 화양읍에 자리를 잡은 청도읍성이다. 수줍음이 많다는 작약꽃, ‘비밀의 화원’과 다양한 공간으로 조성된 읍성을 느긋하게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청도읍성을 배경으로 화사하게 피어난 작약 꽃밭. 청도읍성을 배경으로 화사하게 피어난 작약 꽃밭.

■작약 꽃밭

차에서 내린 낯선 이를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아담한 규모의 작약 꽃밭이다. 꽃이 아주 크게 생겨 함박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화려한 외모와는 달리 꽃말은 ‘수줍음’이다. 꽃 이름에 ‘약(藥)’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데에서 알 수 있듯이 동서양을 불문하고 옛날부터 약재로 많이 쓰였다.

<시경>에 ‘작약지증’이라는 성어가 나온다. 말을 그대로 풀이하면 ‘함박꽃 선물’이라는 뜻이다. 연인이 향기로운 함박꽃을 선물로 보내 정을 더욱 두텁게 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사랑하는 사람끼리 선물하기에 좋은 꽃이라는 이야기다.

파란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떠다닌다. 그 아래에는 초록빛으로 뒤덮인 산과 푸른 잎이 무성하게 자란 복숭아나무, 자두나무가 너른 밭을 가득 채웠다. 온통 푸르고 푸른 세상에 다른 색깔이라고는 화려하게 피어난 빨간 작약뿐이다.


관람객들이 작약 꽃밭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관람객들이 작약 꽃밭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작약 꽃밭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다. 방향을 잘 잡아 청도읍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에 딱 좋을 정도다. 그래도 작약 사진을 찍으려고 적지 않은 관광객이나 사진작가, 연인들이 이곳에 몰려든다. 직접 와서 작약 꽃밭에서 환하게 웃으면서 사진을 한 장 찍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작약 꽃밭의 규모에 아쉬움이 남는다면 바로 옆에 있는 식물원 ‘꽃밭에서 노닐다’에 가면 된다. 마치 자연스럽게 자라난 야생 꽃밭처럼 보이지만 정성이 가득 들어간 인공 정원이다. ‘꽃밭에서 노닐다’로 가려면 카페 ‘꽃자리’ 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차를 사 마셔도 되고, 그냥 정원만 둘러 봐도 된다.


카페 꽃자리 카페 꽃자리

작약, 꽃양귀비는 물론 꽃달맞이, 샤스타데이지, 장미, 물창포 등 다양한 꽃이 숲으로 꾸며진 정원을 가득 메우고 있다. 정원 한가운데에는 팔각정자가 설치돼 ‘꽃자리’에서 주문한 차를 마시면서 바로 앞의 연못을 바라보며 마음을 쉴 수 있다.

정원의 꽃은 다양한 색을 자랑한다. 하얀색, 노란색, 빨간색, 연분홍색이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서로 섞여 누가 더 화사한지 뽐내는 것처럼 보인다. 아치형 철제구조를 뒤덮은 장미는 ‘그래도 5월의 여왕은 나지’라며 환한 미소를 발산한다. 샤스타데이지로 둘러싸인 벤치에는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함께 앉아 밝은 웃음을 가득 담은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숨겨진 정원 ‘꽃밭에서 노닐다’ 숨겨진 정원 ‘꽃밭에서 노닐다’

‘꽃밭에서 노닐다’는 이름 그대로 ‘노니는’ 곳이다. 서두를 필요도, 허둥지둥할 필요도 없다. 마스크를 벗고 꽃과 풀과 나무 사이를 걸어 다니면서 바람에 얹혀 돌아다니는 꽃향기는 물론 풀냄새를 맡아보면 된다. 정원 곳곳에는 유명 시인의 시를 담은 푯말이 서 있다. 정호승 시인의 ‘꽃’도 보인다. 그 자리에서 서서 몇 번이고 시 구절을 곱씹어본다.

‘꽃이 인간의 눈물이라면/ 인간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꽃이 인간의 꿈이라면/ 인간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숨겨진 정원 ‘꽃밭에서 노닐다’ 숨겨진 정원 ‘꽃밭에서 노닐다’

■청도읍성

이제 본격적으로 청도읍성을 둘러볼 시간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도 끝난 마당에 굳이 이곳에서 남의 눈치를 보며 마스크를 쓸 이유는 없다. 대부분 관광객은 마스크를 벗은 채 따사로운 햇살과 싱그러운 바람을 즐길 뿐이다.

청도읍성 축성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고려 시대부터 존재했다고 전해질 뿐이다. 현재 읍성의 모습은 조선 선조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선조는 일본의 침략에 대비해 서울로 향하는 주요 도로 주변에 성을 축조했다. 청도읍성은 1590~92년에 보수됐다. 지금 모습은 과거의 원형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에 도로를 내는 바람에 문루가 여러 개 사라졌다. 성벽도 상당부분 훼손됐다.

청도읍성 바깥쪽에 조성된 연꽃지에서는 아주 작은 연꽃이 하나둘씩 피어나고 있다. 아직은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지만 이제 날씨가 조금 더 더워지는 6~7월이면 읍성을 배경으로 연꽃이 연출하는 풍경도 만만치 않으리라.


청도읍성 바깥의 연꽃지. 청도읍성 바깥의 연꽃지.

청도읍성을 가장 잘 즐기는 방법은 성벽에 올라가 걸으면서 먼저 주변을 살펴보는 것이다. 읍성 둘레는 1.88km에 이른다. 눈이 시원해지고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높지 않기 때문에 고소공포증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잔디가 뒤덮인 읍성 바깥 풍경을 즐기면서 성벽을 한 바퀴 돌아보는 데에는 넉넉잡아도 30분이면 충분하다. 물론 곳곳에 깔끔하고 예쁘장하게 설치된 카페나 시골식당에서 잠시 여유를 부리는 시간은 뺀 것이다


청도읍성. 청도읍성.

성벽을 걷다 가운데 지점에서 내려오면 읍성 밖 잔디밭에 ‘형옥’을 볼 수 있다. 죄수를 가두거나 곤장을 치는 등 벌을 내리던 곳이다. 물론 과거에 이 자리에 형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읍성을 구경하러 오는 관광객을 위해 좋은 위치에 재현해놓은 데 불과하다.

청도읍성을 둘러보다 보면 독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성벽 바깥쪽은 논밭이고 안쪽은 서상마을이다. 제법 잘 정리된 시골마을이어서 천천히 걸어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성 안쪽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성벽에 붙은 인공 연못인 ‘성내지’다. 평소에는 농수용으로 사용되다 전쟁이 나면 식음용수나 방화수로 이용하기 위해 만들었다. 걸어 다니다 지치거나 더우면 이곳의 정자에 앉아 잠시 쉬거나 바로 뒤편에 있는 ‘카페해걸음’에서 차 한 잔을 마셔도 된다. 성내지와 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제법 훌륭한 그림이 나온다.


인공연못 성내지. 인공연못 성내지.

이밖에 성 안쪽에는 출장 온 관원이 잠을 자던 객사, 조선 고종 때 대원군이 외국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세운 척화비, 지방 수령이 행정 업무를 처리하던 동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석빙고, 조선시대 교육시설인 향교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이것으로 부족하다 싶으면 같은 화양읍에 있는 와인터널, 군파크루지, 다로로벽화마을 등을 찾아가도 된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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