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5월, 까마귀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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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중국 진나라에 이밀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네 살 때부터 할머니 유 씨 손에 자란 그는 높은 관직을 내린 진나라 무제에게 고사의 뜻을 전하며 그 사정을 간곡한 글월로 올렸다. 그 유명한 ‘진정표(陳情表)’다. ‘신이 폐하께 절의를 다할 날은 길고, 유 씨를 봉양할 날은 짧습니다. 까마귀가 먹이를 물어다 늙은 어미에게 먹여 은혜를 갚듯이, 조모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봉양하게 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이밀 자신은 44세, 병석에 든 조모는 96세였을 때였다.

오조사정(烏鳥私情), 곧 ‘까마귀가 어미 새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사사로운 마음’이라는 말이 바로 저 글에서 나왔다. 무제는 자식 된 도리를 다하려는 이밀의 효심에 감동해 자기 뜻을 거두고 노비와 식량까지 내려 준다. 옛말에 “제갈량의 ‘출사표’를 읽고 눈물 흘리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고, 이밀의 ‘진정표’를 읽고 눈물 흘리지 않으면 효자가 아니다”고 했다. 그만큼 마음을 흔드는 명문인데, 명문을 뒷받침하는 진심이 바로 오조사정이라는 표현에 집약돼 있는 것이다.

그래서 까마귀는 가정의 달 5월이면 먼저 생각나는 새다. 그러나 시커먼 깃털의 외모 탓에 여전히 나쁜 편견에 시달린다. ‘까마귀 미역 감듯’ 하다는 말은 몸을 씻어도 검다, 그러니까 아무리 노력해도 표가 나지 않고 보람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까마귀는 매일 목욕하는 깨끗한 새다. 지능도 높아서 간단한 도구로 자신의 목적을 이룰 정도로 영리하다. 일찍이 고구려가 다리가 셋인 ‘삼족오’를 국조로 삼거나, 신라 소지왕 때 까마귀에게 찰밥을 주는 오기일(烏忌日)이라는 정월대보름 풍속이 생겨난 것은 까마귀의 명민함과 영적 의미를 보여 주는 사례다.

얼마 전 부산 동래구 한 주택가에서 행인들이 까마귀로부터 공격을 받았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새끼 까마귀가 길옆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근처에 서식지가 있었던 듯하다. 까마귀 생태에도 관심을 갖고 특히 등산객들이 주의를 기울여야 할 요즘이다. 인간과 까마귀가 공존해 가는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매년 까마귀축제를 여는 울산에서는 태화강 국가정원을 산책하다가 까마귀 똥에 맞으면 5만 원 상당의 쿠폰을 준다. 철새와의 공존을 모색하는 기발한 발상이다. 까마귀도 종류는 다양해서 흰까마귀나 회색바람까마귀 같은 희귀동물이 존재한다. 세상의 까마귀가 모두 검지만은 않다는 사실. 편견은 점점 바뀌고 있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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