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다양한 목소리는 가능할까?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영화평론가

여전히 ‘조국 사태’는 민감한 이슈다. 어떤 이에게는 이미 결론 난 사건을 들추는 것일 테고, 또 어떤 이에게는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언젠가부터 ‘조국’이라는 단어는 금기어 또는 희생의 의미로 여겨지며, 이 문제 앞에서 누군가는 침묵하고 또 누군가는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지 못한 채 분열과 극단만 남은 모양새다. 이승준 감독의 ‘그대가 조국’은 끝났지만 끝나지 않았던 사건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다.

여전히 민감한 이슈인 조국 사태
다큐멘터리 ‘그대가 조국’이 기록
2019년 장관 지명 후 67일 다뤄
이념 대결 넘은 작은 목소리 담아


아무도 없는 집, 거울을 보며 옷 매무새를 다듬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 법정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조선 시대로 치면 귀양 간 상태인 거죠. 유배된 사람의 말은 그 어떤 것도 들어 주질 않습니다”라고 말문을 떼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아직 할 말이 더 남은 듯 보이지만 말을 삼킨다. 조국이 등장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기에 이 오프닝은 마치 극영화처럼 극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앞으로 영화 전개를 고려한다면 어떤 논란이 뒤따르더라도 조국의 등장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영화는 조국의 시간, 즉 그가 법무부 장관에 지명된 2019년 8월 9일부터 장관직을 사퇴한 10월 14일까지 67일간의 시간을 따르기 때문이다.

조국이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직후부터 뉴스와 신문은 하루도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청문회는 보이콧당하고, 자녀 입시 비리와 사모펀드 논란은 가족 수사로까지 이어지면서 야당과 검찰, 언론은 조국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한다. 연일 터지는 기사는 거짓과 진실을 판가름할 시간조차 주지 않은 채 쌓여 갔으며, 어느새 조국을 두고 나라가 두 진영으로 분열되고 있음을 광화문 집회 장면을 통해 보여 준다. 영화는 조국을 둘러싼 시간이 가위 ‘광기’ 그 자체였음을 뉴스와 신문, 인터뷰를 통해 증명하고 있다.

기존의 그 어떤 공직 후보자도 받지 않았던 표적 수사는 그가 장관이 되고 난 후에도 끝나지 않는다. 결국 조국은 임명 35일 만에 직을 내려놓는다. 이제 영화는 조국에게서 한걸음 멀어져 철저하게 조국을 수사했던 검찰 권력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비로소 우리는 ‘그대가 조국’의 진정한 주연이 조국이 아니라, 장경욱 교수와 조국 전 장관의 동생 친구인 박준호 씨, IT전문가 박지훈 씨 등 조국 사태에서 증인으로 나섰던 평범한 사람들임을 알게 된다. 그들은 조국 가족의 주변 인물들로 검찰 조사 시 벌어졌던 일들을 담담히 고백한다. 증언의 조작과 유도성 질문, 검찰 조사 때 받았던 치욕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는 증인들, 검찰이 두려워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장경욱 교수는 자신이 한 증언으로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가 실형을 받았다고 생각해 눈물을 훔친다.

세월호를 다룬 ‘부재의 기억’으로 한국 다큐멘터리 사상 처음으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이승준 감독은 ‘그대가 조국’을 통해 “사실을 증명하기보다는 조국 사태와 관련된 인물들이 겪은 일에 대한 마음의 무게, 고통을 보여 주고자 했다”고 밝혔다. 평범한 사람들이 조국 사태의 정중앙으로 끌려 나오면서 그들이 무엇을 보고 듣고 생각했는지를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박준호 씨는 여러 차례의 검찰 소환 이후 “정치에 관심 없던 사람인데 정치적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의 말은 우리에게도 그가 겪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결국 이 영화는 조국이 아닌 검찰의 시간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가 조국’은 조국 사태를 단순히 보수와 진영의 대결 논리로만 말할 수 없게 만든다. 이념의 대결을 넘어 언론과 집단의 광기를, 검찰의 칼날을,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목소리를 담아내는 데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지점이 다소 과잉이나 신파로 치닫기도 하지만 영화가 전하고 싶은 ‘말’은 충분히 전해진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