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영화 ‘브로커’가 던지는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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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올해 칸영화제에서 송강호 배우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브로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영화를 연출한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사회적 통념에 매이지 않는 통찰력으로 은폐된 현실 문제들을 드러내고,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파고드는 작품들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느 가족’ 등 전작들은 빈곤과 방임 속에 고립된 아이들의 고통, 가족의 사망·이혼·결별로 남겨진 사람들의 상실, 혈연으로 얽히지 않은 이들이 가족이 되는 과정을 서늘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려 냈다.

영화 ‘브로커’는 전작들의 연장선에서 한국 사회의 난제들을 다루고 있다. 청소년 임신·출산, 아동 유기, 불법 거래, 베이비 박스, 입양. 어느 것 하나 가볍지 않지만, 꼭 해법을 찾아야 하는 이슈들이다. 단지 영화가 거둔 쾌거에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져서는 안 되는 이유, 신임 대통령의 첫 관람 영화로만 주목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영화 관람 후 대통령은 생명의 소중함과 생명을 지키는 일에 대한 모두의 책임을 일깨워 주는 좋은 영화라고 평했다. 생명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모든 생명이 환대받는 사회가 아니라는 사실도 자명하다. 이제 영화 속 난제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풀어 갈 것인지, 모두의 책임에 앞서 정부는 어떤 책임을 다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책임 있게 실천해야 한다.


청소년 임신·출산 문제 정면으로 다뤄

모든 생명이 환대받는 사회 아닌 현실

국가가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지 질문

아이 손 놓은 엄마만 비난 능사 아냐

안전하게 낳고 존엄하게 키울 권리

공적 시스템 책임 있는 개입이 해법


영화는 베이비 박스 앞에 아이를 유기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영아 유기는 명백한 범죄다. 하지만 영화는 아이를 왜 낳았냐, 왜 버렸냐는 통념적 비난 대신, 아이를 왜 키울 수 없는지 조명한다. 왜 엄마만 비난 받아야 하는지, 과연 이 사회가 홀로 아이를 낳아 키우는 어린 엄마를 충분히 지지하고 지원하고 있는지 묻는다. 사회통념이 규정한 정상 가족 안에서의 출생만 환대하고, 그 틀을 벗어나면 비난하는 사회, 정상 가족 틀에서 벗어난 이들에 대해 지극히 잔여적인 지원만 하는 국가는 책임이 없을까. 합계출산율이 1명이 되지 않아 인구 소멸을 우려하는 사회에서 매년 수백 명(2018년 320명, 2020년 169명)의 아이가 버려지는 현실은 얼마나 역설적인가. 유기 외에도 다양한 이유로 ‘보호 대상’이 되는 아동이 매년 수천 명에 달하는 현실은 심각하다.

영화는 매우 예민한 이슈인 베이비 박스 문제를 전면에 드러냈다. 2009년 한 교회에 베이비 박스가 설치된 이후, 영아 유기를 조장한다는 비판과 유기된 아이의 생명을 지킨다는 옹호 입장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베이비 박스 자체에 천착하면 해법은 찾기 어렵다. 오히려 준비되지 않은 임신과 출산을 어떻게 예방할 것인지, 임신으로 곤란한 상황에 빠진 여성들, 출산과 임신 중단, 아이를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낳을 권리, 존엄하게 키울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부모가 양육하기 어려운 아동을 어떻게 보호하고 지원할 것인지, 질문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영아 유기는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에서 비롯된다. 제대로 된 피임 교육도 시행하지 않고, 계획되지 않은 임신을 했을 때 필요한 정보나 의료·복지·상담 서비스를 공적으로 지원하지 않으면서 아이의 손을 놓은 엄마만 비난하거나 처벌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베이비 박스를 없앤다고 영아 유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국가 관할 밖의 민간 기관이 법적 근거도 없이 이를 운영하는 것은 분명 문제다. 공적 책임의 회피다. 일본, 독일 등 국가들도 베이비 박스를 운영하지만, 공적 지원체계 안에서다. 독일은 100여 개의 베이비 박스를 운영하지만, 1년에 들어오는 아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말 그대로 최후의 안전장치가 된다. 피임·임신·임신 중단에 대한 상담을 제공하는 임신 갈등 상담소를 운영하고, 신뢰 출산법을 제정해 익명 출산을 결정한 여성이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아이를 양육하고자 할 때 다양한 양육 지원제도를 운용하는 정책적 장치들은 극단적 상황까지 가는 것을 막는다. 아이를 불가피하게 양육하지 못하더라도, 지자체의 아동청소년국이 유기된 아동의 후견인이 되어 가정 위탁, 입양 과정에 책임 있게 개입하는 시스템이 뒤따른다.

영화는 유기된 아이를 불법 밀매하고자 했으나 마음을 바꿔 좋은 양부모를 찾아 주려는 브로커들의 선의(善意)를 보여 주고, 비혈연 대안 가족의 공동 육아를 연상케 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범죄를 미화했다는 평은 차치하고, 생명은 개인들의 선의로만 지켜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훈훈한 결말은 다소 허탈하고 불편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현실 문제에 대한 구체적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영화의 역할은 아니다. 영화적 환상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정부와 사회의 책임 있는 해법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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