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 체크] 선거판 달궜던 ‘부산 학력 저하’ 주장,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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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민선 5대 하윤수 부산시교육감이 취임했다. 하 교육감은 지방선거 당시 “부산 학생의 학력이 저하됐다”고 비판하며 전수 학력평가 미시행을 원인으로 꼽았고, 김석준 전 교육감은 근거 없는 공세라며 반박했다. 하 교육감은 정확한 학력 파악을 위해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시험을 실시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이에 <부산일보>는 하 교육감과 김 전 교육감이 선거방송토론회에서 제시한 자료를 바탕으로, ‘부산 학력 저하’ 논쟁을 팩트체크 해봤다.


학력에 대한 정의부터 서로 달라
하윤수 교육감, 입시 결과에 주목
김석준 전 교육감, 종합 역량 중시
서울대 합격자 5대 광역시 중 꼴찌
청소년 역량지수에선 전국 1위
수능 10년 분석 땐 ‘절반의 사실’
대입보다 기초학력에 주목해야


■ 하 “학력 저하” vs 김 “학력 유지”

TV토론회를 보면 두 전·현직 교육감이 생각하는 ‘학력’은 정의부터 차이가 있다. 하 교육감은 시험 점수와 입시 결과 등 ‘성적’을 학력의 척도로 보는 반면, 김 전 교육감은 문제해결 능력 등 종합적인 역량을 중시했다.

하 교육감이 내세운 학력저하의 근거는 서울대 합격자 수다. 대구·대전 등 비수도권 대도시와 비교하면, 2011년 부산의 서울대 합격자 수는 203명으로 대구(157명)와 대전(115명)을 앞섰지만 2017년엔 132명으로 줄며 대구(145명)·대전(134명)보다 적었다. 이광재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고3 학생 1000명당 서울대 합격생 수도 부산은 4.4명으로 5대 광역시 중 꼴찌였다. 다만 졸업생 합격자를 더하면 순위는 달라질 수 있다. 하 교육감 측 자료만 보면 학력저하가 뚜렷하지만 서울대 합격자는 소위 ‘최상위권’ 학생들이기 때문에 중하위권을 아우르는 전반적인 학력 하락을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다.

반면, 김 전 교육감은 대입과 관련해 좀 더 넓은 범주의 데이터를 제시했다. 아시아대학평가 순위를 기준으로 국내 11위인 부산대 이상 ‘진학률’(고3 전체 학생 중 해당 대학 입학생 비율)을 보면 2015년 8.47%에서 2022년 13.45%까지 늘었다. 하지만 이 기간 대학 정원은 큰 변화가 없는 반면 고3 학생 수는 30% 이상 감소했기 때문에, 실제 입학생 수는 줄었다. 2015년 3300여 명에서 지난해 2800여 명까지 떨어졌다가 올해 다시 3400여 명으로 회복했다.

김 전 교육감이 강조한 또 다른 자료는 학생 능력을 종합평가한 ‘청소년 역량지수’다. 청소년 역량지수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OECD 국가와의 비교를 위해 생애학습·생활관리·진로개발·대인관계·사회참여 역량을 종합평가한 지표로, 부산은 2015~2018년 4년 연속 전국 1위를 차지했다. 다만 이후 평가는 없어 최근의 변화는 알 수 없다.



■ 초점 따라 ‘분석·결과’ 달라

김 전 교육감은 수능 성적도 근거로 삼았다. 취임 즈음부터 최근까지 수능 ‘표준점수평균’ 순위를 보면, 2014년 전국 17개 시도 중 4위였던 부산은 이후 5~6위를 오가다 2020년부터 4위를 지키고 있다. 같은 기간 수능 ‘1~3등급(상위권) 비율’의 순위도 5~6위권을 유지 중이다. 이 순위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제공하는 영역(과목)별 성적을 자체적으로 ‘전 과목 합산’ 기준으로 변환한 결과이다.

<부산일보> 취재진은 좀 더 객관적인 분석을 위해 평가원 자료를 바탕으로 최근 10년(2012~2021학년도) 수능 영역(과목)별 순위를 다시 살폈다. 그 결과 김 전 교육감 취임을 전후해 일부 하락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비슷한 순위를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어(언어·B형)의 경우 부산 학생들의 표준점수평균 순위가 2012년 4위에서 2015년 7위까지 떨어졌다가 2018년 이후 꾸준히 5위를 유지했다. 같은 기간 수학가(수리가·B형)는 9위(2015년)까지 하락했다가 2020년 이후 4위를 기록 중이다. 상위권에 해당하는 1~3등급 비율의 순위도 유사한 흐름이다. 국어(언어·B형)만 보면 2012년 4위에서 3년 뒤 9위까지 떨어졌다 최근 3년은 5~7위를 기록했다.

순위만 보면 큰 상승이나 하락은 없지만 등급 비율의 절대적인 수치를 따지면 하락세가 뚜렷하다. 국어를 기준으로 부산 학생들의 1등급 비율은 2012년 3.8%에서 2021년 2.2%로 40% 가량 떨어졌다. 같은 기간 1~2등급 비율은 11.9%→6.6%로 하락폭이 더 컸고, 1~3등급 비율도 24.9%→17.1%로 완만한 하향곡선을 그렸다. 다만, 서울·경기를 제외하면 나머지 모든 지역이 유사한 흐름을 보여 부산만 성적이 하락했다고 볼 순 없다.

이처럼 같은 자료도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학력 저하’로 볼 수도, ‘현상 유지’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상의 자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부산 학생들 학력이 저하됐다’는 주장은 ‘팩트체크 5점 척도’(사실, 대체로 사실, 절반의 사실, 대체로 거짓, 거짓)를 기준으로 따졌을 때 ‘절반의 사실’로 판단된다.



■ 학력=대입? 기초학력이 중요

다만, 시도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수능 성적을 단순 비교하는 게 타당한지는 따져볼 문제다. 부산진로진학지원센터 이성준 대입지원관은 “부산은 4년제 대학이 15곳이나 있기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선 ‘수능은 최저학력 기준 정도만 공부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전했다.

특히 명문대 진학은 지역별로 사교육 인프라와, 수능에 강한 재수생 규모도 영향을 미친다. 곽옥금 동명대 입학처장은 “강남 3구는 재수생 비율이 50% 넘는 학교가 수두룩하고 서울 전체 재수생도 부산보다 배나 많기 때문에 수능 1~2등급만 갖고 이야기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학계에선 학력의 초점을 ‘대학 진학’이 아니라 외국처럼 ‘기초학력’에 맞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부산대 교육학과 윤민종 교수는 “피사(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 성적으로 보면 우리나라가 늘 최고 순위를 차지하지만, 정작 읽기 쓰기 등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상당히 높다”며 “학력저하 문제는 기초학력에 초점을 맞춰 국가 차원에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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