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한국 정치,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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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원 부산대학교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한국 정치가 더 이상 떨어질 바닥이 없다. 이대로는 안 된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경제위기의 먹구름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한국경제는 그 어둠 속으로 빨려드는데 우리 정치권은 참으로 태평이다. 국민만 걱정이다.

대선도 지방선거도 끝났고 국민은 보수정당의 손을 연이어 들어줬지만, 정치권은 아직도 권력투쟁과 당파 싸움 중이다. 아니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국민은 경제적 불안감에 하루하루를 떨고 있는데, 정치권은 공천권 싸움과 네 탓 싸움만 하고 있다. 지금 이 정도면 한국 정치는 병이다, 그것도 중증이다.

윤 대통령 아찔한 도어스테핑
영부인 경찰 조사 불응 겹쳐

여, 사생결단식 권력투쟁 몰두
야, 공천권·차기 대권 싸움판

국민 신뢰·신의 상실 우려
경제위기 맞서 정치권 각성을


대통령은 매일 출근길에 기자들을 만나 정책 혼선을 빚는 말, 스스로 책임지지 못 할 말, 본인도 잘 모르는 말, 대통령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말, 참모들이 다시 해석해 주어야 하는 말, 공무원들이 억울함과 자괴감에 빠지는 말, 국민이 우려스러워 하는 말을 계속해서 내놓고 있다. 국가 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무책임한 말을 너무 쉽게 기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더욱이 학력과 경력, 수상 실적 의혹으로 인해 공인으로 활동하지 않고 내조만 하겠다던 김건희 여사는 대통령 취임 이후 버젓이 공식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본인 스스로 “경력을 부풀렸고 잘못 적은 것도 있다”고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밝혔지만, 김 여사는 경찰의 서면 조사에 50여 일이 지나도록 회신하지 않고 있다. 영부인의 무법적인 행동 앞에 나라의 법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검사들이 국가 요직에 앉은 나라에서 법치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진짜 우려스러운 상황이 발생한다. 정치가 실종되고 권위가 무너지는 것이다. 국민의 신뢰와 신의를 상실하면 정치는 기능을 멈추고 무너진다. 권위가 사라지면 정치인의 권력은 온전함을 잃는다. 지금 대한민국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과 그의 영부인은 신뢰와 신의, 권위와 권력을 점차 상실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와중에 대한민국의 미래와 국민의 삶의 질은 점점 더 불확실성 속으로 빨려들고 있다.

여야도 마찬가지다. 여당 국민의힘은 윤핵관과 이준석 대표 간의 사생결단식 권력투쟁에 빠져 있고, 야당 민주당은 온건파와 강경파 간의 지루한 이판사판식 내분에 빠져 있다. 선거에서 이긴 여당은 나라의 미래와 국민의 삶을 위한 정책 개발에 정신이 없어야 하고 수많은 국가 현안을 챙기기도 바빠야 하는데, 국민의힘은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공적인 일들은 던져 놓고 당권과 공천권을 둘러싼 이기적인 권력 싸움에만 몰두해 있는 것이다.

야당 민주당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패했는데도 진정성 있게 책임지고 성찰하는 큰 정치인이 없고 계파 간 책임 떠넘기기에 바쁘다. 민주당도 국민의힘과 마찬가지로 당권과 공천권과 차기 대권을 위한 권력 싸움에 빠져 있는 것이다. 야당의 주된 기능은 대통령과 여당을 견제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과 여당이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불안에 우선적인 관심이 없고 오로지 미숙한 대통령 역할과 한가한 당내 권력 싸움에만 빠져 있는데도, 야당인 민주당은 집중적으로 책임을 묻거나 비판하지 않고 대안 제시도 안 하고 있다. 야당이 야당의 본원적인 기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여야가 모두 제보다 제삿밥에 정신이 팔려 있으니, 국회가 잘 돌아가기는 아예 불가능하다. 국회는 후반기 원 구성도 아직 못했다.

대통령과 여야와 국회는 한국 정치를 주도하고 책임지는 정치권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는 정치권이 없다. 정치를 주도하고 책임지는 대통령도 없고 여도 야도 국회도 없기 때문이다. 미숙함과 한가함과 이기적인 사익에 빠져 이름만 있고 실질적인 기능은 없는 유명무실한 대통령과 여야와 국회는 지극히 위험하다. 공동체에 정치와 권위가 부재하면, 공동체 공동의 일은 무너지고 개인들의 삶은 더 어려워진다.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인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 앞에서 소아(小我)를 버리고 대아(大我)를 취하라고 하셨다. 소아가 나 자신과 내 가족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것이라면, 대아는 나나 내 가족보다 민족이나 국가 전체를 위해 더 노력하는 것이다.

지금은 경기침체 신호가 여기저기 울리고 경제위기의 전조가 눈앞에 보이는 위기 상황이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경제 문제에 선차적인 관심이 없고 오직 당권과 공천권과 대권 싸움만 벌이고 있는 정치권은 대아와는 거리가 멀다. 국민은 우리 정치권과 정치인들이 소아를 버리고 대아를 추구하는 큰 정치를 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소아를 버리고 대아를 취하면 더 큰 대아와 함께 소아도 따라온다. 이것이 비움의 정치이고 큰 정치다. 이런 정치를 왜 우리 정치권과 정치인들만 모르는지 국민은 그저 답답할 뿐이다. 정치권과 정치인들의 대오각성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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