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에 폭염까지… 서민들의 더 힘겨운 ‘여름 나기’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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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부산 서면의 한 상점이 출입구를 열어둔 채 영업하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10일 부산 서면의 한 상점이 출입구를 열어둔 채 영업하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전례 없이 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냉방 시설이 없는 공간이나 뙤약볕 아래서 일을 해야 하는 소외된 이웃들의 여름 나기가 더욱 힘겨워졌다. 때 이른 폭염에 고물가와 경기 침체까지 더해진 3중고로 이들은 무더위 속에 건강은 물론이고 생계마저 위협받는 형편이다.

10일 낮 12시께 부산 해운대구 한 백화점 주차장 입구에서 안내원 서 모(20) 씨는 빨간색 경광봉을 힘차게 흔들고 있었다. 그는 햇볕을 가리기 위해 챙이 있는 모자를 썼다. 열을 식히기 위해 팔에는 '쿨 토시', 목에는 헤드셋 모양의 미니 선풍기를 매달았지만 무더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모자를 살짝 들어 올렸는데도 젖은 머리에서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차량과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습식사우나 같은 날씨 탓에 온몸이 금세 땀에 젖었다. 서 씨는 “1시간 근무하면 30분 휴식이 주어지는데, 덥고 습한 탓에 조금만 근무해도 땀이 많이 난다”며 “뙤약볕 아래에서 일하시는 분들 모두가 때 이른 더위에 많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뙤약볕 아래 백화점 주차 안내원

차량·아스팔트 열기에 ‘팥죽 땀’

도시철도 역사 내 청소 노동자

악취 나는 분리수거실서 땀 식혀

전통시장 상인들과 노점상들

고물가 속 손님마저 줄어 ‘울상’


실외에서 일하는 사람들만큼 힘겨운 여름을 보내는 실내 노동자들도 있다. 지하에 일터가 있는 도시철도 청소노동자들이다. 지난 8일 부산도시철도 2호선 사상역에서 일하던 청소노동자들은 이미 남색 작업복이 땀에 젖어 까맣게 얼룩져 있었다. 이들은 장시간 일을 하다 땀이 많이 나거나 다리가 아프면 쓰레기 봉투가 쌓인 분리수거실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다. 분리수거실에는 청소노동자들이 가져온 간이 의자 4개가 놓여 있다. 이들은 분리수거실 안에 있는 선풍기 2대에 의존해 무더운 여름을 나야 한다. 여느 사람들처럼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도시철도 열차 안에서 더위를 식히는 건 언감생심이다.

역사 안에는 청소노동자들을 위한 휴게실이 마련돼 있다. 하지만 이들은 하루 9시간 근무 시간 중 점심 식사 시간과 쉬는 시간을 포함한 공식적인 휴식 시간은 1시간 30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지하의 혹독한 근무 환경 속에 눈치를 안 보고 간간이 무더위에 차오르는 숨을 돌리려면 분리수거실을 찾을 수밖에 없다.

사상역에서 일하는 한 청소노동자는 “비가 오는 날이면 쌓인 쓰레기 봉투에서 역한 냄새가 올라와 잠깐 쉬는 것도 힘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전통시장 상인과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는 노점상들도 무더위에 고물가까지 겹쳐 올여름은 더욱 힘겹다. 변변한 냉방 시설을 갖추지 못한 가게나 햇빛 아래에서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고 있지만, 무더위에 시원한 대형 마트로 발길을 돌리는 이들이 계속 늘어나기 때문이다. 냉방기를 가동할 수 없는 전통시장의 경우 무더위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열대야 현상도 이어지며 전통시장을 찾는 손님 발길은 더욱 줄었다.

부산도시철도 사상역 주변에서 과일과 채소를 파는 노점상 김 모(64) 씨는 “날씨가 무더우면 파는 물건이 쉽게 상해 양산 3개를 펼쳐 그늘을 만들었다”며 “날씨가 더운 데다 과일과 채소 가격이 너무 올라 손님들 발길이 뚝 끊겼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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