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근 원장이 저지른 탈법 해외 입양, 피해자 수 아무도 몰라 [형제복지원 '주례' 이야기]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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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주례' 이야기] (하) 가려진 진실

형제복지원 내 식당에서 식사 중인 아동·청소년 원생들.부산일보DB 형제복지원 내 식당에서 식사 중인 아동·청소년 원생들.부산일보DB

최악의 인권 유린이 벌어졌던 부산 형제복지원을 거쳐 해외로 입양된 아동 10명에 대한 자료가 6년 만에 추가로 발견되면서 형제복지원 해외입양 실태가 다시 주목받는다.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은 해외입양 일을 직접 챙길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해외입양 규모와 관련 금전 거래 등의 증거는 발견되지 않아 이 부분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이 때문에 형제복지원 출신 입양아동에 대한 적극적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부랑인시설, 해외 입양 권한 없어

입양기관 통해 추진했더라도 문제

해외선교단체와 연계한 것으로 추정

입양 규모·금전 거래 등 증거 베일

주례, 진실·화해위에 조사 요청

정부 차원 진상 규명 이뤄져야


제305회 부산시의회 정례회 제2차 본회의가 열린 지난달 21일 본회의장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방청을 하고 있다. 부산일보DB 제305회 부산시의회 정례회 제2차 본회의가 열린 지난달 21일 본회의장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방청을 하고 있다. 부산일보DB

■형제복지원, 입양추진 가능한 곳이었나

부산시의 ‘형제복지원 피해자 실태조사 연구용역’의 책임연구원이었던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남찬섭 교수 등이 2020년 5월에 펴낸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실태조사’를 보면 형제복지원의 전신은 1960년 7월 부산 남구에 설립된 ‘형제육아원’이었다. 육아원은 미인가시설이었는데 1965년 1월에 재단법인으로 인가를 받고, 1971년 12월에는 사회복지법인으로 변경됨과 동시에 육아시설을 부랑인시설로 전환했다. 이때 법인의 명칭을 형제복지원으로 바꾼 것으로 추측된다. 부산시는 1975년 7월 형제복지원과 부랑인·노숙인 수용보호 위탁계약을 체결한다. 앞서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은 1974년께 형제복지원을 부랑인 시설로 전환하기 위해 ‘부랑인 부랑아 단속차’라고 적힌 단속차량(피해자들은 ‘탑차’로 지칭)을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부랑인시설이었던 형제복지원은 시설의 성격상 수용 아동 해외입양을 자체적으로 추진하기가 법적으로 불가능한 곳이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형제복지원 출신 아동의 해외입양 사례 모두 홀트, 동방사회복지회, 한국사회복지회 등의 입양기관과 연결돼 있거나, 주례 매티슨(44·여) 씨의 사례처럼 제3의 사회복지시설과 연루돼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형제복지원이 다른 시설을 통해 수용 아동을 해외로 입양보냈다 하더라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13년 10월 발의된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조사 법률’은 형제복지원 사건을 “국가기관이 1975년 12월 15일에 공포된 ‘내무부훈령’에 따라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사람들을 강제노역에 종사시키고 이들을 살인·상해하거나 또는 사망, 상해 등의 결과에 이르게 한 사건”으로 정의한다. 부랑인 신고와 수용 등의 내용을 담은 내무부훈령은 그 당시의 법률과 헌법에 비춰봐도 위헌·위법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만약 내무부훈령에 따라 형제복지원에 감금된 아동이 다른 기관을 거쳐 해외 입양됐다면 이 또한 명백한 불법이다.

박민성 전 부산시의회 의원은 “형제복지원은 아동을 일시 보호할 수 있었지만, 입양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었다”면서 “당시 박인근은 복지계의 거물이었고, 다른 복지시설과도 꽤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아동의 해외입양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인근이 직접 챙긴 해외입양

형제복지원은 재원 확보를 위해 형제육아원 시절부터 아동 입양사업을 추진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해외선교단체였던 십자군연맹과 연계돼 해외입양이 이뤄졌다는 증언이 나온다. 남 교수 등 책임연구원과 접촉한 피해자들은 해외입양 때문에 십자군연맹과 외국인 선교사가 방문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형제복지원 내 아동의 해외입양 여부를 최종적으로 판단한 사람은 원장 박인근이었다.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실태조사’ 보고서에는 한 피해자의 증언이 실려 있다.

“내가 미국으로 입양가게 됐어요. 미국으로 입양을 가려고 6명이 뽑혔어요. 새벽에 원장님이 딱 나와서 ‘오늘 비행기 타고 갈 건데’ 하면서 최종 시트를 작성하더라고요. 그러다가 나는 빼더라고. 부모님이 왔다 갔다는 내용이 서류에 나와 있으니까, ‘서류를 만들어서 부모님이 오실 것’이라고 빼더라고요. 괜히 보내면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까.”

다만 형제복지원이 아동을 입양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금전적인 이득을 취했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게다가 상당수의 아동 자료가 파기된 상황이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아동이 해외로 입양됐는지도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현재까지 드러난 형제복지원 출신 해외입양 아동 21명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에 발견된 형제복지원 출신 해외입양 아동 10명 중 6명은 모두 미아 또는 가출한 아동으로 경찰(파출소)이 형제복지원 입소를 의뢰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기록을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부산시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 추진위원회 위원인 박숙경 경희대 교수는 “믿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박 교수는 “경찰도 당시 형제복지원의 인권 유린에 일조한 ‘부역자’였다”면서 “형제복지원에 아이들을 데려가는 것을 실적으로 관리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당시 단속경찰관에게 형제복지원 측이 ‘뒷돈’을 건냈다는 진술(부산일보 2018년 3월 29일 자 1면 보도)도 있다. 심지어 부모가 있는 아이도 형제복지원에 감금돼 언론에 크게 보도된 사례도 있다. 만약 이들 6명 중 한 아이라도 형제복지원에 강제로 끌려왔다면 가족을 영영 볼 수 없는 비극의 단초를 경찰이 제공한 셈이다.

6명 중에 포함된 매티슨 씨도 자신의 입소 경위에 대해 이 부분을 가장 의심스러워하고 있다. 그는 “형제복지원이 이름을 ‘황주례’로 새로 지은 것도 부모가 나를 찾지 못하게 한 의도가 아닌가 싶다”면서 “경찰이 복지원에 나를 넘길 때 내 주머니에서 1000원짜리 지폐가 발견됐는데, 아마도 심부름을 가다 경찰에 붙잡힌 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형제복지원 출신 아동의 해외입양에 대한 국가차원의 진상조사는 첫걸음조차 떼지 못한 상황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을 조사 중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관계자는 “매티슨 씨는 위원회에 진상규명을 요청해 조사가 진행될 예정이지만, 해외입양인 가운데 피해 사실을 신고한 이는 매티슨 씨가 유일하다”며 “매티슨 씨 사례부터 먼저 파악한 뒤 추가적으로 발견되는 내용이 있으면 조사를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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