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만들 사람도 없는데”… 정부, 인력양성 예산 ‘반토막’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산업부 요청 조선 인력 예산 200억
지역 양성 120억 중 60억만 반영

경남 거제 조선기자재 업체 ‘한숨’
수주량 밀려들지만 노동력 태부족

조선사, 한정된 인력 ‘빼가기’ 갈등
업계 “정부가 절박한 현실 외면”

거제시 오비일반산단에 자리 잡은 중견 조선기자재업체 (주)삼녹. 선박 핵심 설비인 배관 분야에서 자타공인 첫손에 꼽는 사업장으로 최근 수주가 늘면서 일감이 밀려들고 있지만, 인력난에 제작 공장 3동 중 1동은 2년째 개점 휴업 중이다. 김민진 기자 거제시 오비일반산단에 자리 잡은 중견 조선기자재업체 (주)삼녹. 선박 핵심 설비인 배관 분야에서 자타공인 첫손에 꼽는 사업장으로 최근 수주가 늘면서 일감이 밀려들고 있지만, 인력난에 제작 공장 3동 중 1동은 2년째 개점 휴업 중이다. 김민진 기자

“수 조 원짜리 계약 따내면 뭐 합니까. 만들 사람이 없는데.”

6일 오전, 경남 거제시 오비일반산단에 자리 잡은 중견 조선기자재업체 (주)삼녹. 선박 핵심 설비인 배관 분야에서 자타공인 첫손에 꼽는 사업장이다. 거제 양대 조선소가 필요로하는 배관 물량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수주 시장이 살아나면서 덩달아 일감이 밀려들고 있다. 마침 전날도 대우조선해양이 1조 8000억 원 규모 대형 수주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런데 한창 분주해야 할 작업장엔 적막감이 감돈다. 요란한 망치질 소리와 번뜩이는 용접 불꽃은 온데간데없고, 한쪽에 쌓인 용접기와 멈춰버린 지게차엔 먼지가 수북하다. 제작 공장 3곳 중 1곳은 벌써 2년째 ‘셧다운’ 상태. 할 일은 산더미인데, 작업할 인부를 못구해 멀쩡한 공장을 놀리고 있다.

안창환 수석부장은 “공장 1동을 정상 가동하려면 못해도 40명이 필요하다”며 “나머지 (공장) 2동도 30명 남짓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내국인은 계속 빠져나가고, 코로나 사태로 외국인 노동자 공급은 끊기면서 인력난이 가중되고 있다. 이 상태라면 원청도 힘들어 진다”며 “지원을 늘려도 모자랄 판에 줄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거제시 오비일반산단에 자리 잡은 중견 조선기자재업체 (주)삼녹. 최근 수주가 늘면서 일감이 밀려들고 있지만, 인력난에 제작 공장 3동 중 1동은 2년째 개점 휴업 중이다. 김민진 기자 거제시 오비일반산단에 자리 잡은 중견 조선기자재업체 (주)삼녹. 최근 수주가 늘면서 일감이 밀려들고 있지만, 인력난에 제작 공장 3동 중 1동은 2년째 개점 휴업 중이다. 김민진 기자

모처럼 맞은 수주 풍년에 신바람을 내던 조선업계가 인력난 역풍을 맞고 주춤한 가운데, 내년 정부예산에서 조선업 미래를 담보할 인재 양성 관련 예산이 대거 삭감된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 기간산업으로 조선업 경쟁력 강화를 공언해 온 정부가 정작 필요한 투자는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김경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산업부가 기획재정부에 요구한 조선업계 인력양성사업 예산 200억 원 중 실제 반영된 것은 60억 원이다.

부산·울산·경남과 전남·전북 등 조선업 밀집 지역 인력난 해소를 위해 준비한 ‘지역조선업 생산인력양성’ 예산 120억 원 중 절반만 기재부 문턱을 넘었다. 이는 현장 인력을 대상으로 교육훈련과 채용지원금을 지원하는 신규 사업이다. 2025년까지 3년간 7200명 교육, 3600명 채용을 목표로 잡았다. 총사업비 489억 6000만 원 중 매년 120억 원을 국고로 충당하려 했지만, 기재부 심의 과정에서 반 토막 났다. 여기에 조선 기술 인력을 대상으로 인공지능(AI) 융합교육프로그램 개발을 돕는 ‘조선·해양 미래혁신인재양성 허브’ 예산 80억 원은 전액 삭감됐다.

업계에선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정부가 절박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업계는 앞선 고강도 구조조정과 긴 수주 절벽 후유증에 수천 명의 노동자가 현장을 떠난 뒤 돌아오지 않아 고통을 겪고 있다. 장기 불황을 거치며 임금 수준이 크게 낮아진 데다, 호황이 끝나면 언제든 감원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사업장이 있는 거제의 경우, 2015년 12월 양대 조선소 원청과 사내·외 협력사를 포함해 7만 6000여 명에 달했던 종사자 수는 꾸준히 감소해 올 8월 기준 3만 4000여 명까지 떨어졌다.

한국 조선은 지난해 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 2013년 이후 최대 수주 실적을 올리며 재기의 발판을 놨다. 이 물량 건조가 본격화할 연말부터 인력 수요가 급증할 전망이다. 산업부의 ‘조선업 생산직접직 인력 대비 향후 필요 인력’를 보면 거제, 부산, 울산, 전남을 중심으로 연말까지 최대 8000명 이상의 인력이 더 필요하다. 이대로는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다. 지역 경제 낙수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노동자들이 도장작업을 하고 있다. 부산일보DB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노동자들이 도장작업을 하고 있다. 부산일보DB

이렇다 보니 한정된 인력을 둘러싼 조선사 간 갈등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급기야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케이조선·대한조선 4개 조선사는 최근 현대중공업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현대중공업의 ‘핵심 인력 빼가기’가 도를 넘었다는 이유다. 업계에선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에서 현대중공업으로 이직한 직원이 최소 300명 이상일 것으로 보고 있다.

변광용 민주당 거제지역위원장은 “조선해양 기술인력 수급은 한시가 급한 사안이다. 투자가 절실한 시점에 관련 예산을 대거 삭감하는 것은 국익과 민생에도 결코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적극적인 정치적 요구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