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차 위 확성기 든 일본 경찰, 인파 상황 내려다보며 현장 통제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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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과 대조 ‘시부야 핼러윈’

지난달 도쿄 번화가 수만 명 밀집
경시청, 100여 명 경찰 별도 투입
교차로 각 모퉁이 ‘DJ폴리스’ 포진
차도·인도 간 폴리스라인으로 통제

일본 경찰들이 지난달 30일 도쿄 시부야에서 핼러윈을 즐기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경찰들이 지난달 30일 도쿄 시부야에서 핼러윈을 즐기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대규모 압사 사고는 경비 부재가 빚어낸 참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도쿄, 홍콩 등은 일부 경비 인력과 대책만으로 수십만 명의 인파를 적절히 통제해 왔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달 30일 “소방·경찰 인력을 미리 배치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으나 실상은 달랐던 것이다.

서울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일본의 인파 사고 대응이 재조명받고 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코스프레 문화가 퍼져 있어 핼러윈은 손에 꼽히는 연중 이벤트다. 특히 도쿄 최대 번화가인 시부야에서는 최대 100만 명이 몰리기도 한다.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열리는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지난달 29~30일에도 주요 교차로에 수만 명이 밀집했다.


이에 일본 경시청은 핼러윈 등 주요 이벤트가 열릴 경우 교통 통제, 압사 사고 방지 등을 위해 100여 명의 경찰력을 별도 투입한다. 확성기를 든 경찰이 직접 지휘차에 올라 인파 상황을 내려다보며 안내하는 ‘DJ폴리스’들도 교차로 각 모퉁이에 포진한다. 이들은 “옆 사람을 따라 움직이세요” “멈춰서 사진 찍지 마세요” 등 콘서트장의 DJ처럼 속사포로 인파를 통제한다. 더불어 현장에 투입된 경찰들은 차도와 인도 사이에 폴리스라인을 치고 보행자가 차도로 나오지 않도록 유도하는 임무도 맡는다.

이와 함께 시부야구도 매년 1억 엔가량의 예산으로 핼러윈 경비 대책을 마련해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왔다. 경시청과 시부야구는 그간 최소한의 인원과 비용으로 인파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본의 이 같은 대비는 2001년 효고현 아카시 불꽃 축제에서 벌어진 압사 사고가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당시 불꽃놀이를 보려는 인파가 한꺼번에 좁아진 인도교로 몰리면서 11명이 숨지고 247명이 다쳤다. 이는 빠져나갈 길 없이 좁고 경사진 골목길에 인파가 몰리면서 발생한 이태원 참사와도 비슷하다.

일본은 이태원 참사 이후 핼러윈 경비를 추가로 대폭 강화하기도 했다.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31일 “핼러윈 기간에 다수의 인파가 예상되는 경우에는 현지 지자체 등과 연계해 교통정리를 실시하고 사고 방지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경시청은 31일 경찰관 약 350명을 시부야에 배치했다. 시부야구도 100여 명의 경비 인력을 추가로 배치하는 한편 31일 밤부터 상인들에게 주류 판매를 자제할 것을 요청했다. 지난달 24일부터는 3인 1조로 노상음주 자제를 요청하는 순찰도 돌고 있다.

핼러윈을 흥겹게 즐기는 홍콩도 최대 유흥가 란콰이퐁의 일부 도로를 폐쇄하고 곳곳에 일방통행 안내 표시를 했다. 응급 상황 발생 시 이용할 수 있는 비상로도 확보했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밤 시간대에는 15~20분 간격으로 란콰이퐁 진입 인원을 통제한다. 홍콩 경찰은 “이태원 참사 이후 취한 특별 조치가 아니라 예년과 유사한 평소 행사 통제 매뉴얼”이라면서 “수년간 란콰이퐁에서 벌어지는 축제에 대응해 온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실제 란콰이퐁에서는 1993년 새해 전야를 맞아 인파가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압사 사고가 발생해 21명이 숨지고 62명이 다쳤다. 이태원 골목처럼 란콰이퐁에도 구불구불한 좁은 경사로와 계단이 많아 매년 사고 우려를 낳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란콰이퐁 상인협회장은 “1993년 비극에서 교훈을 얻었기 때문에 란콰이퐁은 안전하다”면서 “경찰은 자신들이 정한 최대 운집 인원을 넘어가면 더는 사람들을 란콰이퐁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것이 인파 통제 공식”이라고 말했다.

미국도 최근 핼러윈 기간에 아이들의 교통 사망사고가 잇따르자 도심 일대를 '차 없는 거리'로 만들어 보행자 사고를 예방하고 있다. 뉴욕시의 경우 핼러윈 당일인 31일부터 맨해튼, 브루클린, 브롱크스, 퀸스 등지의 거리 약 100곳을 일시폐쇄한다고 밝혔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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