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민들레 되고, 나비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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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대표

민들레

마음이 비어 헐렁할 땐, 차라리 꽃 그림을 그립시다. 민들레, 너는 하필이면 모서리에 섰느냐? 아무래도 바람이 드셀 텐데..... 아니~ 아니야. 내가 미처 몰랐구나. 그래야 빨리 씨를 날린다는 것을. 쓸쓸한 너에게서 배운다. 바람을 향해 외롭게 서는 것의 아름다움을. 그러해야 또 새로이 키워진다는 것을.

- 허탈의 강을 건너고 계시는 모든 분께.


이태원 참사 충격 속에서

재난과 도시에 대해 생각

건축·도로에서 오는 재난

“안개 속에 공룡 숨긴 도시”

희생자 유족 비통한 마음

슬픔만 느끼기도 벅찬데

관계자 변명에 분노 느껴


일주일이 훌쩍 지나갔고, 나는 무심히 텔레비전 속 시민들을 본다. 안경 너머에 눈꼬리가 올라간 여자, 눈길을 아래로 떨군 중년의 남자, 마스크 속에 울분을 감춘 청년. 모두 화가 나 있고 침울하다. 표정 그리기 연습하던 나는 그만 무색하여 그림 그리기를 멈추고 아들의 SNS를 기웃거렸다. 흘러나온 피아노 선율은 느리고 우울하다. ‘Adagio Doloroso(느리고 슬프게)’ 나는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곡 아래에는 ‘20221103 만듦, 안타까움에’라고 사족이 달려 있다. 가슴 쓸어내린 며칠 후에 다가온 슬픔과 미안한 마음을 곡으로 만들었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었다.

2022년 10월 30일 새벽. 행사 관계로 경주행을 준비하던 나는 우연히 켠 텔레비전의 화면을 보고 눈과 귀를 의심하였다. 다급한 목소리와 어지러운 장면. 아나운서는 핼러윈 데이에 이태원에서 벌어진 참사를 전하고 있었다. 놀라 아내를 깨우고 다급히 말하였다. “얼른 전화해 봐.” “전화가 안 되는데요.” 연주, 콘서트, 페스티벌.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아들을 생각하며 우리 부부의 혼이 점점 빠져나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경주행 차에 올랐다. 그리고 울려 온 아내로부터의 전화. “조금 전에 전화 받았어요. 그런데, 어제 저녁에 거기에 갔었데요. 그리고 집으로 오는 길에 저도 사고 소식을 들었다 하고….” 아내의 말꼬리가 흐려지고, 나도 전화를 끊었다. 모골이 송연하고 숨이 가빠졌다.

뉴스는 상황이 더욱 심각해졌음을 알린다. 하지만 내게 더 놀라운 사실은 이 큰 재난 앞에 우리 가족이 잠시 서 있었던 것과 나의 속수무책을 알아차린 것이다. 혼란스럽다. 잠시 후 온 나라는 슬픔의 도가니가 될 것이다. 아들이 무사히 인천의 제집으로 돌아간 것을, 어찌 다행이란 말과 불행이란 단어로 재단할까?

어느 날, 인천에 있는 아들의 집에서 안개 낀 거대 도시를 바라본 적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도시가 안개 속에 커다란 공룡들을 숨겨 놓았군.” 오늘도 어쩔 수 없이 재난과 도시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큰 재난은 자연으로부터 오지만, 어떤 재난은 도시·건축·도로와 같은 물리적인 것들로부터 온다. 거기엔 반드시 사람이 관여되어 있다. 그러니 이런 소식이 들릴 때마다, 일종의 트라우마에 휩싸인다. 우리의 작업과 관점은 그것에 얼마나 충실한가? 이번 사건 이후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반성 될 것이다. 불법 건축, 소방도로, 도로의 통제 시스템.

하지만 오늘은 그것들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온전히 슬픔만 받아들이기에도 이미 벅차다. 아스팔트 위의 때 묻고 구겨진 운동화의 도열이 나를 또 울컥하게 한다. 변명에 급급한 관계자들의 마스크 속에 숨겨진 가벼운 입은 나를 화나게 한다. 이어질 희생자 유가족들의 원망. 그것들은 과연 시간 속에 감추어질까? 아~ 그리고 젊은 영혼에 시 한 편을 올린다.


노란 나비

그날로부터 그대 날아라. 싸늘한 가을바람과 함께 가시던 날. 거기 땅에 우리 함께 마음 묻고 허기에 가슴 비던 날. 동공 아래로 돌부리만 채이던 그날로부터 당신은 날아라. 그리고 훗날 한결 가벼우신 날갯짓으로 오시라. 멀리 또 가까이, 머리 위로 또 발아래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침내 우리 함께, 웃으며,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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