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에 맞서 싸우는 인물에게서 그 사회 본질 발견”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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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생 비평가 연구포럼
첫 행사로 황국명 평론가 조명

1985년 비평 시작, 소설 집중
시에 쏠린 비평 분야 균형 맞춰
황국명 “지역 작품 많이 읽어야”

황국명 평론가는 “서로 친하면서 지역 작품 많이 읽어야 한다”고 부산 문단에 주문했다. 부산일보DB 황국명 평론가는 “서로 친하면서 지역 작품 많이 읽어야 한다”고 부산 문단에 주문했다. 부산일보DB

황국명(인제대 명예교수) 평론가는 부산에서 소설 비평을 본격적으로 수행한 최초의 평론가다. 그것이 그의 부산 문학사적 자리이며, 부산 문학에서 ‘지역성’을 내세운 1980년대를 내재화한 한 장면이다. 1985년 무크지 <전망> 2집을 통해 비평 활동을 시작한 그는 이후 소설 비평을 주로 했다. 부산에서 소설가들이 서서히 늘어나던 시점이 그 즈음이다. 앞세대인 고석규 김준오가 시 비평을 한 것에 비춘다면 그는 부산 문학의 균형을 맞춘 셈이다.

<오늘의문예비평>이 기획한 ‘1950년대생 비평가 연구포럼’에서 지난달 29일 ‘제1회 비평가와의 대화’에 나선 1955년생 황국명 평론가는 ‘김윤식을 통해 이른 루카치’가 그의 소설론의 밑자리에 있다고 했다. 요컨대 ‘소설, 근대소설은 우리에게 과연 무엇이었나’하는 것이 그의 비평의 기본 관점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지역적으로’ 심화한다면 ‘주변부에 정치 경제적 차별과 억압을 양산한 한국근대화는 주변부와 그 사람들에게 과연 무엇이었는가를 민중적 관점에서 보려 했다’는 것이다.

‘소설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일’을 발제한 고봉준(경희대 교수) 평론가는 “루카치에 기댄 황국명은 ‘자신의 운명과 맞서 싸우는 인물에게서 그 사회의 본질을 발견할 때’ 비로소 장르로서의 소설이 성립될 수 있다는 관점을 취한다”고 했다. “소설은 바로 근대적인 서사 형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밀한 사적 영역을 탐하는, 1990년대식과 그 이후의 소설은 ‘진정한 의미의 소설’이라고 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을 것으로 봤다. 쓴다고 다 소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고봉준은 “루카치는 도스토옙스키에서 소설론을 끝냈으나 바흐친은 도스토옙스키에서 소설론을 시작했는데 ‘소설은 자신의 규범을 가지지 않는다’고 한 것이 바흐친”이라며 “루카치적 소설에서 이탈한, 오늘날 크게 점하는 판타지와 장르문학을 어떻게 봐야 하나”고 황국명에게 질문했다.

즉답을 내는 것이 문학은 아니다. 차이와 다름을 드러내는 ‘자신의 방법’이 문학인 것이다. 황국명은 ‘내가 걸어온 비평의 도정’을 통해 그에게 선명히 남아있는 장면을 말했다. 그것은 군 제대 후 복학생 시절인 1980년 신군부 계엄 상황 때 학교 운동장을 점령한 군인들의 막사 몇 동과 탱크, 대검을 꽂은 M16 소총이 있는 구체적 장면이었다. “부자유, 억압적 권력의 실재 앞에서 그때 ‘오금이 저리는’ 생생한 경험을 했다”고 그는 말했다.

‘제1회 비평가와의 대화’. 왼쪽부터 하상일 황국명 고봉준 평론가.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제1회 비평가와의 대화’. 왼쪽부터 하상일 황국명 고봉준 평론가.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그런 데서 출발해 1980년대 그의 초기 비평은 무크지 운동, 지역문학 운동의 연장선에 놓여 있었다. 황국명은 초기에 ‘비평에 대한 메타비평’을 전개하면서 ‘문지 그룹’을 비판했다. 문지 그룹의 이른바 ‘지성’은 우리 사회의 정치적 긴장을 배제하는 보수적 전략으로 귀결된다는 것이었다. 고봉준은 “왜 창비가 아니라 문지였냐, 창비 쪽 입장이었나”라고 물었다. 황국명은 책으로 묶지 않았을 뿐이지 창비 비판도 수행했다. 중앙의 권위·논리를 격파하면서 부산에서 대등한 문학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지역적 관점을 세운다는 게 그의 좌표이자 ‘인정투쟁’이었다.

그는 시대 전망이 불투명한 1990년대에 메타비평에서 개별 작품 비평으로 옮겨갔고, 특히나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을 말한 김준오 시학을 가져와 시평을 하기도 했다. 고봉준은 “메타비평을 멈춘 것은 잠행의 1990년대에 할 말이 없었던 게 아닌가. 숨 막히던 침묵의 그 시기, 현실의 어지러움 속에서 시와 소설을 읽으면서 뭔가라도 붙잡으려 했던 게 아닌가”라며 “그러나 잃어버린 존재의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동일성 시학의 낭만성과, 근대와 싸우는 근대소설의 현실성·역사성이 양립할 수 있나”고 캐물었다. 황국명은 “계속 메타비평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며 “‘운명으로서의 언어’와 ‘모험으로서의 언어’라는 양면성은 우리 근대문학이 감당해야 했던 민족어 내부의 긴장인바, 개인적으로 시 비평이 재미있었고 평자의 상상력을 확장하는 점이 매혹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특히 지역 소설에 대해 애정을 가지면서, 두루뭉수리 이야기하는 풍토를 넘어서기 위해 작품을 세밀하게 읽으려 했다”며 “일단은 서로가 인간적으로 친해야 하며, 지역 작품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부산의 소설가·시인·비평가들에게 주문했다. 문화·문학의 생산과 수용을 해명하는 데 마르크스주의 정신분석학 진화론이 필요하며 이른바 용맹정진이 요구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인간적인 모든 것, 즉 인간의 몸과 뇌, 인간의 동기와 인지, 사유와 행동을 들여다보기 위해 진화인문학을 도전적 과제로 여기고 있다”며 “공부 길에서 진화론을 만난 것은 새로운 지적 모험이라 할 것”이라고 했다. 지방과 중앙의 현기증 나는 편차를 포함해 교과서적 권선징악을 비웃듯이 짓밟아버린, 한국사회에 내재화된 약육강식의 냉엄한 논리를 해명하는 열쇠가 진화론에 있을 거 같다는 말이었다. 그것이 세계의 절망을 응시하는 그의 비평적 지점이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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