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 부산 스타트업] “기로에 놓인 부산 신발산업, ‘신플’로 다시 전성기 찾아야죠”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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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 부산 스타트업] (주)크리스틴컴퍼니

브랜드-제조공장 연결 ‘신플‘로
2019년 창업 후 39억 투자 유치
디자인부터 제조 2개월로 단축
자체 브랜드 ‘크리스틴’도 성장

(주)크리스틴컴퍼니 이민봉 대표가 부산 동구 초량동 기업부설연구소에서 올여름 온라인 패션 스토어 ‘무신사’에서 가장 많이 판매한 신발인 ‘크리스틴’ 샌들을 소개하고 있다. (주)크리스틴컴퍼니 이민봉 대표가 부산 동구 초량동 기업부설연구소에서 올여름 온라인 패션 스토어 ‘무신사’에서 가장 많이 판매한 신발인 ‘크리스틴’ 샌들을 소개하고 있다.

신발산업은 한때 부산을 먹여 살리는 효자산업이었다. 여전히 신발산업 하면 부산이 떠오를 만큼 신발산업은 부산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지만, 동남아시아 저가 공세에 산업 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부산 신발산업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주)크리스틴컴퍼니 이민봉(38) 대표는 부산 신발산업이 다품종 소량생산 고급화 전략으로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파란만장 창업 준비

부산 출신인 이 대표는 ‘신발 가족’이었다. 나이키에 완성된 신발을 납품하는 공장에 신발 가죽을 가공해 납품하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 “1980년대 후반 불이 꺼지지 않던 사상구 신발공장 일대가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공장이 항상 돌아가다 보니 늘 활기가 넘치고 사람들의 밝았던 표정이 생생하고요. 그때의 좋은 기억 때문인지 창업을 한다면 신발 관련된 사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버티지 못하고 신발공장은 도산하고 말았지만, 이 대표의 마음 한구석에 신발산업에 대한 생각이 남았다. 이후 경남 김해시로 터를 옮긴 부모와 함께 이 대표는 김해에서 자랐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선택한 이 대표는 학창 시절 다양한 경험을 했다. 군 입대 전까지는 김해 식당 여러 곳으로부터 채소 주문을 받아 새벽마다 사상 새벽시장에서 채소를 사서 트럭에 싣고 김해로 돌아가 납품하는 일을 했다. 처음에는 식당을 하는 부모를 돕기 위해 시작했지만, 점점 입소문이 나며 김해 내 20곳 식당과 계약하기에 이르렀다.

학생 창업도 해봤다. 학교 내 연구를 위해 마련한 두부 생산시설을 활용해서 매일 아침 생산한 신선한 두부를 김해 내 가정에 아침마다 배송하는 사업이었다. “새벽 배송이라는 말도 없던 시절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새벽 배송 콘셉트의 사업이었네요.”

졸업을 앞두고는 진로를 금융권 취업으로 틀었다. 당시 금융권 취업 열풍이 불어 외국계 금융회사에 취업했다. 하지만 1년간 근무한 끝에 적성에 맞지 않다 판단하고 진로를 바꿔 대기업 전략기획팀에 신입 공채로 새롭게 입사했다. “LG유플러스에서 5년 정도 근무했는데요. 전국 휴대전화 매장의 실시간 판매 정산 시스템을 만드는 플랫폼 프로젝트 매니저를 했습니다. 사업의 A부터 Z까지 배운 귀한 시간이었죠.”

이 대표가 본격적으로 신발산업과 관련된 창업을 고민하게 된 것은 동대문 의류산업의 구조를 파악하고 나서부터다. 동생이 동대문에서 소위 ‘사입삼촌’이라고 불리는 의류를 다량으로 떼서 유통하는 일을 했는데, 이 일을 도우며 자연스레 창업을 준비했다.

■게임 체인저 된 ‘신플’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사상 신발 제조공장을 지켜보며 이 대표는 깨달은 점이 많았다. 한국에서 신발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으면 신발 제조산업의 대부분이 몰려있는 부산을 찾을 수밖에 없는데, 대부분 수도권에 위치한 신발 브랜드사가 신발 제조를 위해 신발 부자재 공장들을 찾으면 최소 물량 등이 맞지 않아 쫓겨나는 모습을 번번이 목격했다.

“신발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원단 공장, 봉제 공장, 부속품 공장 등 최소 10개의 분업화 된 공장을 거쳐야 하는 구조인데요. 중간 에이전시가 이들 브랜드사와 신발 부자재 공장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더라고요. 에이전시를 통하지 않으면 신발을 만들기도 어렵고, 에이전시를 통한다고 해도 원하는 생산 일자나 제품 퀄리티, 수량을 맞출 수 없어서 고생하는 상당히 왜곡된 시장 구조였습니다.”

그래서 이 대표는 신발 제조 전문 솔루션 ‘신플(SINPLE)’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에이전시 없이도 신발 브랜드사가 원하는 신발 제조에 최적화된 부자재 공장을 한 번에 연결하는 플랫폼이다. ‘신플’을 통하면 각 신발에 최적화된 신발 원단 공장이나 봉제 공장, 부자재 공장을 연결할 수 있고, 당장 생산이 가능한 공장을 확인할 수 있어서 신발 제조 기간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난해 8월 ‘신플’ 테스트 버전을 내놨고, 지난 1월 정식 오픈한 ‘신플’에는 벌써 전국 300여 개의 업체가 등록돼 있다. “전국에 1020개 신발제조공장이 있는데 그중 700개가 부산에 있습니다. 이들 중 절반 정도가 ‘신플’에 등록했고요, 이제는 전국 수제화 구두를 대부분 생산하는 서울 성수동 제화업체에서 ‘신플’에 등록하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실제로 ‘신플’을 도입한 이후 디자인부터 생산 완료까지 평균 8개월 이상 걸리던 것을 2개월까지 빠르게 단축해 업체의 만족도가 높다. ‘신플’이 등장하며 밀려난 에이전시도 마지막 품질 검사 등 새로운 역할을 맡으며 시장 구조가 재편되고 있다.

■글로벌 패션테크기업으로

크리스틴컴퍼니는 창업한 지 이제 4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빠른 투자 유치와 성장으로 스타트업 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특히, 2021년 네이버의 벤처캐피탈(VC) 네이버디투스타트업컴퍼니, 부울경 지역 특화 액셀러레이터 시리즈벤처스, 부산연합기술지주 등으로부터 연속으로 프리A 시리즈 투자를 유치했다. 지금까지 총 39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화제를 모았다.

“투자 받기가 절대 쉽지 않았습니다. 투자 유치를 위해 생면부지의 투자사를 50여 곳 이상을 찾아서 부딪혀 보고, 투자를 위한 기획서를 하나씩 고쳐나갈 정도였으니까요. 신발 제조 플랫폼이라는 특성상 아예 투자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기업은행이 지원하는 IBK 창공 부산 6기였는데, 전국 데모데이에서 1위에 오르면서 투자사의 관심을 받았고 투자를 연속으로 유치할 수 있었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팁스(TIPS·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지원) 선정으로 R&D(연구·개발)에 날개를 달았다. 앞으로는 ‘신플’에 AI(인공지능)를 도입해 신발 제조에 필요한 공장을 자동으로 매칭하는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크리스틴컴퍼니가 ‘신플’ 테스트를 위해 자체 기획한 신발 브랜드 ‘크리스틴’도 2020년 런칭 이후 2030 세대의 주목을 받으며 성장 중이다. 품질과 디자인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국내 패션슈즈 최초로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명품관 편집숍에 입점했고, 현재 자사 몰과 무신사 등 플랫폼을 통해 활발히 판매 중이다.

“이탈리아가 저가 신발 제조 대신 고가 맞춤형 신발 제조에 집중해 다시 살아난 것처럼 부산도 다품종 소량생산하는 고급화 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내년에는 사상이나 서면 쪽에 신플을 활용해 만든 신발을 판매하는 플래그숍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앞으로 글로벌 슈즈 브랜드가 ‘신플’을 활용해 신발을 제조하고 수출할 수 있도록 돕는 글로벌 패션테크기업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글·사진=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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