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의 생각의 빛] “성공은 죄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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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한국의 학교 현장은 큰 변화가 절실한 곳
사회적 기준에 맞춘 명예나 목표보다는
새 세상 열어갈 주체를 기르는 교육 소망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을 하곤 한다. 〈구약성경〉의 ‘전도서’ 1장 9절에서 비롯되어 널리 회자되는 말이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나니.’ 여기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거나 입에 올렸을 것이다. 이 표현은 한편으로는 ‘시크’한 느낌을 주는 말이기도 하다. 2024년이 밝았을 때 사람들은 대체로 ‘올해만큼은 뭔가 다르겠지’ 같은 생각을 한다. 한 해가 저물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될 무렵 부산하게 새해를 맞이하곤 한다. 어떤 이는 새해라고 해서 특별할 게 없다는 식의 말을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새해를 맞아 각자 기대와 희망을 품는다. 설령 달라질 환경이나 여건이 여의찮더라도 내심 ‘올해만큼은…’ 어딘가 달라지리란 믿음과 함께.

사람들이 해마다 품게 되는 그러한 희망이나 기대는 매번 ‘속을지라도’ 변함없이 작동된다. 어떤 시간의 마디나 경계를 지나고 맞이할 때면 절로 일게 되는 마음의 ‘세탁’은 오래전부터 인류 문화의 특징이었다. 이는 신화적 시간이 오늘날에도 성스러움의 위장된 형태로 남아 있다고 분석한 미르체아 엘리아데 신화론의 골자이다. 기술문명이 극도로 발전한 오늘날의 현대인이라고 하더라도 별수 없이 ‘종교적 인간’이라는 논리다. 여기서 ‘종교적’이라는 수식어는 특정 종교를 말하는 게 아니라 고대인의 신화적이고 원형적인 삶의 규칙이나 태도와 관련되어 있음을 뜻한다.

인간을 포함하여 만물의 기원이나 탄생에서부터 죽음과 소멸에 이르는 일련의 순환 사이클에서 숱한 신화적 요소들이 개입되거나 만들어진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이왕이면 ‘사람 노릇’ 제대로 하고 가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은다. 사람 노릇이란 게 흔히 말하는 ‘성공 신화’와 밀접하게 엮여 있다. 크게 성공하지는 못하더라도 남들만큼이나 그럭저럭 삶을 영위할 수만 있어도 그나마 실패한 삶이 아니라는 통념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왕이면 다홍치마’란 말도 있듯이, 경쟁을 해서 남들보다 좀 더 우월한 지위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욕망이 팽배해진 요즘이다. 그 피비린내 나는 세계의 첫 마당이 되는 곳이 바로 학교다.

교육의 본래 지향점이나 목적이 실종된 지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변화된 사회 여건과 시대의 요구에 발맞춰 교육정책이 조금씩 바뀌지만 여전히 잡음과 부정적인 여론이 끊이지 않는 까닭을 생각해 본다. 위정자들이나 교육 관계자들은 매번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교육정책의 근본적인 전환과 대책을 이야기하지만, 아직도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선 교육 현장의 훌륭한 선생님들과 사학 설립자를 비롯한 재단 이사장의 가치와 철학을 무시하고 싶지는 않다. 정치가들의 교육정책도 단지 책상머리에서만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나름대로 고민을 거듭한 끝에 수립된 정책이기에 우선은 믿을 수밖에 없다.

사회 여러 부문에서 변화가 가장 더딘 곳 가운데 하나가 ‘교육 문화’일 것이다. 최근 경남 양산에 있는 개운중학교와 효암고등학교의 졸업장 문구가 알려져서 화제다. 아니 ‘졸업장’이 아니라 ‘지극한 정성’이란 이름을 달았다. ‘지극한 정성’을 펼치면 이런 식의 문구가 나온다. ‘학생은 솜털 보송한 아이로 우리 학교에 왔었는데, 울고 웃으며 보낸 3년 동안 몸과 생각이 자라서 더 넓은 곳으로 보냅니다. 붙들어 안아주고 싶고,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가득하지만 출가하는 자식을 보듯 입술을 깨물며 보냅니다. 우리보다 더 좋은 선생님, 더 좋은 벗들을 만나서 멋진 삶을 가꾸시길 기원합니다.’

일반적인 ‘졸업장’을 받는 학생의 마음과, 위 ‘지극한 정성’에 담긴 문구를 읽으며 학교를 떠나는 학생의 마음은 다를 수밖에 없다. 전자는 상급 학교에 진학하여 이 나라 교육정책을 수립하는 방편인 톱니바퀴의 일원으로 자연스럽게 편입되는 반면, 후자는 더욱 새로운 세계에서 만나게 될 사람들을 상상하며 자신을 추스르는 주체로 거듭날 확률이 높다. 물론 절대적인 논리는 아니다. 그만큼 여태까지의 교육 관행을 깨트리는 일이 학생에게 끼치는 영향이 막대하다는 뜻이다.

위 두 학교는 시대의 어른으로 조명된 적이 있는 효암학원 채현국 선생이 이사장으로 계셨던 곳이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이름을 알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거나 중요한 사람이 되려고 하거나, 그런 데 삶의 목적을 두지 않고 순하고 착하게 지낼 생각만 하면 굳이 남을 이길 이유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이런 삶의 철학이라면 흔히 말하는 ‘성공’은 이웃을 죽이는 크나큰 죄악이 될 수밖에 없다. 성공이야말로 인생의 가치 있는 수확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같은 사람을 둔중하게 때리는 망치와도 같은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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