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승현의 남북 MZ] 흥남부두와 영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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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아픔 품은 역사의 현장
새해 한반도 안보 상황 악화일로
역사 되새겨야 고통 반복되지 않아

대학에서 근현대사 수업을 하다 보면 한국전쟁과 관련된 사건 속에 자연스럽게 ‘영도다리’와 ‘흥남부두’ 얘기가 나온다. 사실 다른 지역에서 교수로 활동할 땐 지나칠 법한 내용이긴 했는데 부산이라는 지역적 특징과 필자의 출생지가 묘한 조화로 스토리를 이어 주기 때문이다. 필자의 고향은 ‘흥남부두’가 속한 함흥이고 현재의 직장은 영도다리를 건너야만 되는 위치에 있다. 북한의 함흥에서 태어난 사람이 현재 부산의 영도다리가 있는 곳에서 사는 까닭이 의아해할 법도 한 남북 단절과 외면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시간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다.

작고한 영도 출신의 가수 현인이 1953년에 발표한 대중가요 ‘굳세어라 금순아’는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 정착한 피란민이 흥남부두에서 헤어진 금순이를 영도다리 난간 위에 앉아 기다리는 애끓는 심정을 담아내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 수도로 불렸던 부산에 와 있던 피란민들은 서울 수복 후 부산을 떠나 고향으로 갈 수 있었지만, 흥남철수작전 등으로 내려온 이북 출신들은 끝내 돌아가지 못하고 부산과 그 주변 도시에 터를 잡는다. 그래서 학교 학생 속에는 실향민 가족이 제법 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전개하다 보면 학생들은 확연하게 집중하는 모양새를 취한다. MZ세대에 속하는 함흥 출신의 교수가 영도에서 사는 것도 궁금할 테고 자신들이 매일 오가는 영도다리에서 울려 나오는 노래의 실체도 그제야 파악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도다리 입구에는 1.5m 높이의 현인 동상이 자리해 있는데 동상의 오른발을 건드리면 영도대교 곳곳의 스피커에서 ‘굳세어라 금순아’가 울려 퍼진다. 부산에 내려와 집을 구하던 어느 날 영도다리 입구의 노래비에서 그 사연을 읽고 주변에 집을 구했다. 그리고 나는 가사에 나오는 흥남부두를 매일 되읊으며 고향을 그리고 있다.

이쯤 되면 학생들은 1000만 관객의 눈물을 짓게 했던 영화 ‘국제시장’을 통해 자신들의 생각을 정리하고 발표한다. 영화의 시작은 흥남철수작전이다. 흥남철수는 한국전쟁에 참여한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린 유엔군 10만 5000명과 피란민 10만 명을 193척의 선박을 통해 열흘간 구출한 대대적 후퇴 작전이었다. 흥남을 떠난 마지막 배 빅토리호는 150명이 정원인 화물선이지만 군수물자 25만t을 버리고 함흥 지역의 피란민 1만 4000여 명을 태웠다. 하지만 승선한 사람과 승선하지 못한 사람들로 수많은 금순이의 운명이 갈라졌다.

그럼에도 생명의 배 빅토리호에서는 감동적인 기적이 일어났다. 신생아의 탯줄을 이로 끊어야 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5명의 새 생명이 탄생했던 것이다. 태어난 아기들은 미군에 의해 ‘김치1~김치5’로 불렸다. 한국식 이름을 잘 모르는 미군이 태어난 순서대로 숫자를 매겨 가며 ‘김치’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흥남 출신의 실향민인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모와 누나도 이 배를 타고 남측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1951년 1·4후퇴 시기 ‘부산으로 와라, 영도다리에서 만나자’ 했던 피란민들은 73년이 지난 지금 생존한 이가 많지 않다. 한국전쟁으로 생긴 1000만 명에 달하는 이산가족 중에 정부의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등록된 이산가족 찾기 신청자는 지난해 기준 13만 3983명이며 이 중 9만 4102명이 사망했고 생존자의 85%(3만 4341명)가 80대 이상일 정도로 이산가족의 고령화도 심각한 수준이다. 평생 가족을 그리는 아픔과 고통 속에서 흥남부두와 영도다리를 서성이던 금순이들은 하늘나라로 떠나지만, 이 땅에서는 분단이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북한은 새해부터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 400여 발의 포탄을 연이어 발사했고 김정은은 한국은 주적이며 기회가 온다면 초토화해 버리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한반도의 안보 상황은 엄중하다 못해 심상치 않다.

흥남부두에서 화물선을 타고 내려왔던 피란민 세대, 배를 곯으며 보릿고개를 넘기던 전쟁 세대는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서 짧은 기간에 한국을 세계 10대 경제 대국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한국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는, 지금 안보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인식하지 못한다고 질책당하기 일쑤다. 하지만 수업 내내 필자는 학생들을 관찰한다. 그들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금순이’었고 수업을 통해서라도 그 사실을 깨달은 후 학생들의 태도는 예전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산의 근현대 질곡의 역사와 피란민의 애환이 서려 있는 역사 현장을 MZ세대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하면 아픔과 고통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고신대 교양학부 교수(통일학·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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