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재파의 생각+] 선거의 효율성과 선거의 공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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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 기초교양대학 교수·공모 칼럼니스트

지난 13일 대만 총통과 입법위원(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치러졌다. 대만의 선거는 2024 지구촌 첫 대선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미중 갈등을 둘러싼 국제 정세에 큰 영향을 끼치는 선거라는 점에서 그 결과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리고 선거 결과뿐만 아니라 대만의 독특한 선거 방식이 SNS나 국내외 언론을 통해 알려지며 화제가 되고 있다.

대만에서는 투표가 끝나면 투표소가 바로 개표소로 바뀌어 그 자리에서 개표가 이루어지는데, 개표 방식이 흡사 과거 우리의 국민학교 시절 반장 선거를 연상하게 한다. 먼저 선거관리원이 투표함에서 투표지를 한 장씩 꺼내 기표된 후보자의 이름을 큰 소리로 외치고 투표지를 머리 위로 들어 참관인이 확인할 수 있게 한다. 그러면 다른 선거관리원이 칠판에 적힌 후보자의 이름 옆에 ‘바를 정(正)’ 자로 득표수를 기록한다. 이런 방식으로 투표함의 개표가 모두 끝나면 빈 투표함을 참관인에게 보여 준다. 이런 개표 과정은 누구나 현장에서 직접 참관하고 촬영도 할 수 있다.

최근 진행된 대만 선거 수개표 관심

선거 효율성 중점 우리와 다른 모습

의혹 불식 등 위해 절차 재정립 필요

또 대만은 사전, 부재자 투표 제도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투표권을 행사하려면 선거일에 자신의 호적지로 가서 투표해야 한다. 상당한 불편을 감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만의 투표율은 70%가 넘는다고 한다. 대만의 이러한 선거 방식에 대해 미국 블룸버그 TV는 “대만의 수동 개표 방식은 다소 고루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공정하고 안전하다”고 말했으며, 독일의 한 시사주간지 기자는 “대만의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다”고 평했다.

SNS와 언론을 통해 대만의 선거 방식을 알게 된 우리나라의 많은 유권자도 대만의 투표와 개표 방식이 공정하게 생각되며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방식을 도입하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우리나라 유권자들이 대만식 선거 방식 도입을 원하는 이유는 2020년 총선과 2022년 대선에서 불거진 각종 불법 선거 의혹이나 소송 등으로 투표와 개표 방식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나라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므로 대만식 선거 방식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경우 부재자 투표를 없앨 경우 군인들의 참정권을 빼앗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토 면적과 유권자 수, 투표소 수, 접근성 등이 각기 달라 대만처럼 투표소에서 곧바로 손으로 개표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큰 어려움이 있다.

다만 대만 선거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투표와 개표 과정에서 선거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 이를 지키기 위해 발생하는 많은 불편을 기꺼이 감수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우리나라도 선거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발표한 투·개표 관리 절차 개선안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선관위는 선거 때마다 계속되는 부정선거 시비 의혹을 불식하기 위하여 오는 4월 총선부터 개표 사무원이 투표지를 일일이 확인하는 수검표 절차를 도입하고, 사전 투표함 보관 장소에 설치된 CCTV 영상을 24시간 공개하겠다고 하였다. 선관위의 개선책을 놓고 개표 방식에서는 일부 진전이 있지만 투표 방식은 사실상 그대로여서 반쪽짜리 개선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현재 사전 투표는 투표 관리관이 현장에서 투표용지에 관인(官印)을 직접 날인하지 않고, 관인이 미리 인쇄된 투표용지를 나누어 주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투표용지가 조작, 도난, 분실될 경우 부정 투표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실제 2020년 총선 이후 이루어진 선거무효 소송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비정상 투표용지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사전 투표용지에 대한 여러 의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관위는 ‘실무 현실’을 고려해 현행 제도를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여기에서 실무 현실이란 관인을 직접 날인하기 위해서는 선거 사무원을 더 투입해야 하는데 이에 따른 비용 증가의 문제, 투표 시간이 늘어나는 등의 문제를 말한다. 즉 선관위는 선거의 투명성과 공정성보다 선거의 편의와 효율성을 더 우선시한 것이다.

민주주의의 다른 이름은 선거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선거의 공정성을 지키는 것은 곧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공정한 선거를 위해 추가 소요되는 비용이 얼마가 됐든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고, 투표 시간이 얼마나 늘어나든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투·개표 개선책을 마련하고 있는 지금, 선거의 공정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아 단 하나의 부정선거 의혹도 제기되지 않도록 제도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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