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2년 허송세월한 산업은행 이전

강희경 기자 him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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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쟁으로만 얼룩진 21대 국회 막 내려
첨예한 대립 속 부산도 아쉬움만 가득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 처리 불투명
민주당 줄곧 외면…기약 없는 산은 이전
지역 여·야 정치권 아무런 역할 못 해
22대 총선 중앙당 공약화 여부 관심

21대 국회가 곧 막을 내린다. 민생은 팽개치고 정쟁으로만 얼룩졌다는 평가를 면하긴 어렵다. 근근이 명맥만 이어오던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이번 국회에서 아예 사라진 모습이다. 각종 쟁점 법안들은 국회 입법권과 대통령 거부권의 강 대 강 충돌로만 끝났다. 국회의 첨예한 대립 속에 부산도 아쉬움만 가득 남았다. 20년 숙원사업이던 가덕신공항 건립은 2029년 조기 개항으로 결론이 났지만, 그 외에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지역 최대 현안인 산업은행법 개정과 고준위 방폐물 관리 특별법 제정이 이번 국회에선 사실상 물 건너갔다. 2030월드엑스포 추진이 좌절된 이후 부산 대도약을 견인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부산 글로벌 허브도시 조성 특별법’ 통과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가 최근 박형준 부산시장과 만난 자리에서 국토균형발전을 강조하며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과 관련해 “관련 상임위와 협의해 (특별법에)힘을 보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이야기했다지만,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위한 필수 절차인 산은법 개정에 대해 그간 노골적으로 제동을 걸었던 민주당의 총선을 눈앞에 둔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는 해석이 나온다.


산은 부산 이전에 대해 민주당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부산을 찾았던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산업은행법 개정안과 관련해 침묵으로 일관했고, 지역 상공계의 건의문에도 “잘 살펴보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놨다. 지난 대선 때 이 대표는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경쟁하듯이 부산 발전을 위한 공약을 쏟아냈다. 이 대표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꿈꾸고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부울경 메가시티의 중심으로 부산을 다시 세우겠다”며 쇠락하는 부산 재건을 위해 적극 나서겠다는 입장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단순히 현 대통령의 공약이라는 이유로 지역의 바람을 외면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민주당 부산시당도 중앙당 눈치만 볼 뿐 부산의 목소리를 중앙에 전달하고 설득하는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은 부산의 산업 구조 재편을 위해 추진돼 왔다. 기존 제조 산업 위주로는 돌파구를 못 찾는 부산 경제 부흥을 위해 산업과 물류 금융 기능을 결합하자는 취지다. 이런 이유로 노무현 정부 때 부산을 국제금융도시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되고, 이후 일부 금융기관들이 이전됐다. 그러나 기존의 예탁결제원, 주택금융공사, 자산관리공사 등 이전 금융기관들이 지역 경제와 연계해 금융중심지 역할을 수행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이에 부산을 비롯한 부울경에선 지역개발에 앞장설 수 있는 대형 정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 유치가 꼭 필요하다고 역설해 왔다. 수도권에 대응하는 또 다른 성장 축인 남부권 성장을 위한 필수 기관이라는 것이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은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민주당에 발목이 잡힌 꼴이지만, 여당도 무기력했다. 산업은행 이전을 국정 주요 현안 과제로 올리는 데 실패했다. 이에 지역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에 대한 쓴소리도 터져 나온다. 지역 여권 관계자는 “만약 산업은행 이슈가 부산이 아니라, 광주나 대구였으면 어떻게 진행됐을까”라며 “민주당은 호남의 이슈를 전국화해서 이미 법이 통과됐을 것이고, 대구도 부산보다는 쉽게 사업이 추진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대구경북신공항과 달빛고속철도 등 대구와 광주의 대규모 교통 인프라 사업은 순식간에 탄력을 받아 가시화되고 있다. 그는 “부산 의원들이 호남과 대구 의원들보다 정치력이 떨어지면 국회에서 단체 삭발을 하는 식이라도 부산의 간절함을 보여줘야 하는데, 총선을 앞두고 제 살길 찾기에만 급급하다”고 꼬집었다.

지방 소멸 위기에 따른 국토균형발전이 대한민국의 피할 수 없는 당면 과제가 된 것도 오래 전이지만, 여전히 수도권 비대화는 멈출 줄 모른다. 반도체 산업 육성에 수십 조원을 쏟아붓고, 수도권을 거미줄같이 연결하는 광역급행철도 공약도 쏟아진다. 국가 경쟁력 확보와 과밀화된 수도권 주민들의 교통 인프라 확충 차원이니, 지방 주민들도 충분히 이해는 한다. 그러나 지방은 ‘이제 답이 있나’ 할 정도로 갈수록 암울해지고 있다. 제동이 걸리는 부산 현안 과제들을 보며 ‘수도권에 대응하는 제2의 경제 축 육성’이란 구호는 공허하기만 하다.

2022년 대선 공약 이후 2년을 허송세월한 산업은행 부산 이전은 안타깝게도 22대 총선 이후를 기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됐다. 더 늦어지지 않으려면 양당의 공약화로 못 박아야 한다. 산은 부산 이전과 관련해 이번 국회에서 별 역할을 못했던 민주당 부산시당이 총선 1차 공약으로 다소 황당하게도 ‘제22대 국회 임기 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본점 부산 이전’을 내걸었다. 구호에만 그칠지, 중앙당의 공약으로 반영될지 궁금하다.

강희경 정치부장 himang@busan.com


강희경 기자 him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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