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코앞에 두고 원정 가는 제2도시 아이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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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유일 동물원 삼정더파크
휴원 4년째… 부산시와 소송 중

유치원·초등생 울산 등서 체험
장거리 이동에 멀미·안전 고충
아예 동물원 갈 계획 접는 곳도

7일 부산 유일의 동물원 부산진구 초읍동 삼정더파크 정문이 굳게 닫혀 있다. 2014년 개장한 삼정더파크는 적자와 운영 비용 등을 견디지 못해 2020년 4월 문을 닫아 휴원 4년째를 맞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7일 부산 유일의 동물원 부산진구 초읍동 삼정더파크 정문이 굳게 닫혀 있다. 2014년 개장한 삼정더파크는 적자와 운영 비용 등을 견디지 못해 2020년 4월 문을 닫아 휴원 4년째를 맞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동물원에 가려면 부산을 떠나야 한다. 봄이 와도 교사들은 동물원으로 현장 체험학습을 갈 생각을 접는다. 부산 중심에 동물원이 있는데 아이들은 그곳에 들어갈 수 없다. 멀쩡한 동물원이 문을 닫은 ‘제2의 도시’의 민낯이다.

지난해 4월 19일 부산 사상구 주감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은 울산 남구 울산대공원 동물원으로 현장 체험학습을 떠났다. 부산진구 초읍동 어린이대공원 ‘삼정더파크’가 2020년 문을 닫은 후 부산에 운영 중인 동물원이 없기 때문이다.

당시 2학년 1~5반 학생 110명은 왕복 2시간 이상 버스를 타야 했다. 주감초등 A 교사는 “버스를 오래 타는 게 익숙하지 않아 멀미를 하기도 했다”며 “그렇게 이동하느라 정작 동물원에 머무는 시간이 줄어 아쉬워하는 아이들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앵무새 같은 동물을 보는 걸 너무 좋아했다”며 “어린이대공원처럼 거리만 가까웠다면 체험 시간을 더 늘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봄을 맞아 다시 개학을 해도 부산 유치원생과 초등 저학년생들이 쉽게 동물원을 찾긴 어려울 전망이다. ‘갈비뼈 사자’ 논란을 겪은 김해 부경동물원은 지난해 8월 영업을 중단했고, 현장 체험학습을 가려면 울산이나 대구 동물원까지 가야 하는 실정이다. 이동 시간이 긴 어린이와 안전에 더 신경 써야 할 교사 모두 고충이 많을 수밖에 없다.

위험 부담을 안고 부산을 벗어나야 하니 애초에 동물원에 갈 생각을 접는 학교도 적지 않다.

해운대구 초등학교 교사 B 씨는 “부산에 문을 연 곳이 없어 동물원에 갈 생각을 안 하거나 추진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그나마 울산대공원 동물원에 가는데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6학년은 수학여행으로 용인 에버랜드나 경주 버드파크 등에 갈 수 있지만, 유치원생과 초등 1~2학년을 거리가 먼 동물원까지 데려가는 일은 부담스럽다”고 했다.

부산 한 유치원 원감인 C 씨는 “동물권 문제가 있더라도 아이들 기억에 남을 체험 활동이라 판단해 ‘삼정더파크’에 가곤 했다”며 “문을 닫은 후 부산에 갈 곳이 없어지면서 동물원을 체험 활동 장소에서 배제하는 유치원이 대다수일 것”이라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다른 도시로 떠나야 동물원에 갈 수 있는 실정에 분통을 터뜨린다. ‘제2의 도시’에서 하나뿐인 동물원이 문을 닫는 건 “말이 안 된다”는 반응이 많다. 해운대구 주민 김 모(37) 씨는 “아이와 울산대공원 동물원에 한 번 다녀온 적이 있다”며 “부산에 있는 삼정더파크에 볼거리가 훨씬 많아 아쉽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는 “2020년 4월 삼정더파크가 문을 닫기 전 아이가 사자를 봤는데 최근에도 그 이야기를 꺼냈다”며 “기린을 보고 탄성을 지르며 좋아하던 모습이 기억나는데 부산 아이들을 위해 삼정더파크가 문을 다시 열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2014년 개장한 삼정더파크는 부산에 하나밖에 없는 동물원이다. 2005년 성지곡동물원 폐업 후 유일하게 관람객을 맞았지만, 적자와 운영 비용 등을 견디지 못해 2020년 문을 닫았다.

부산시 요청으로 동물원 공사와 운영을 맡아온 삼정기업은 부산시가 협약에 따른 매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2020년 6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부산시가 매수 의무 조항을 지키지 않았다며 500억 원대 소송을 낸 것이다. 500마리가 넘는 동물은 삼정기업이 동물원에서 보호하고 있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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