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생명 구한 층간소음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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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앗, 아래층 아줌마다./ 쿵쿵 뛸 때도/ 올라오지 않던 아줌마/ -우리 조용히 놀았는데/ -맞아, 살금살금 다녔잖아/ 이때 들리는 아줌마 목소리/ -쌍둥이들 어디 아파요?/ 너무 조용해서 올라왔어요/ 그 말 듣고/ -우리 안 아파요, 건강해요/ 쿵쾅거리며 뛰쳐나갔다.’

우승경 수필가가 지은 ‘아래층’이란 동시다. 한국동시문학회가 지난 2월 펴낸 우수 동시 선집 〈내가 있잖아!〉에 실려 있다. 윗집 아이들 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아픈지 걱정돼 와봤다는 아랫집 아줌마. 각박한 세상에서 정말 고맙고 정다운 어른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2020년 기준 국내 전체 주택 중 아파트가 63%나 되고, 층간소음 분쟁이 사회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여서 더욱 훈훈하게 느껴지는 장면이다.

동시의 감동적인 묘사와 달리 현실 속 층간소음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서 발생한 소음 갈등은 크게 늘었다. 한국환경공단의 층간소음 상담 건수는 2019년 2만 6257건, 2020년 4만 2250건, 2022년 4만 393건, 지난해 3만 6435건 등이다. 층간소음에 취약하게 건립된 공동주택이 수두룩한 반면 천장에서 발걸음 소리 같은 게 조금만 들려도 신경이 곤두서는 사람과 아래층의 소음 고통에 무심한 이가 많기 때문일 테다.

이웃 간 층간소음 시비는 잦은 다툼을 낳기 일쑤다. 섬뜩한 범죄로 이어질 때도 있다. 층간소음 관련 살인, 폭력 등 5대 강력범죄는 2016년 11건에서 2021년 110건으로 10배 증가했다. 올 1월 28일 경남 사천시 한 빌라에서 50대 남성이 층간소음으로 말다툼을 벌이던 윗집 30대 여성을 흉기로 살해했다가 지난달 29일 재판에서 징역 30년을 구형받았다.

층간소음의 반전 사례가 최근 부산 기장군 기장읍에서 일어났다. 30년 전 지어진 T아파트에 사는 한 주민은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도와주세요”란 소리를 들었다. 이어 윗집을 찾아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는 걸 확인했고, 아랫집은 문을 계속 두드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 주민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관리사무소로 달려가 아랫집에 전화해도 받지를 않자 112와 119에 신고했다고 한다. 경찰과 소방이 출동해 아랫집 문을 뜯고 들어간 결과, 독거노인이 안방 침대와 벽 사이에 끼어 장시간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어 구조 후 병원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골칫거리 층간소음이 위태로운 처지에 놓인 소중한 목숨을 살린 셈이다. 단절된 이웃에 대한 애정과 소통의 중요성, 이해와 배려의 필요성을 일깨운다.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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