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총성 없는 전쟁] ② 대한민국 남극 진출사
1985년 탐험대 첫발, 88년 세종기지 이어 내달 장보고기지 준공
오는 2월 준공을 앞둔 장보고과학기지 건설이 한창이다. 위쪽 사진 맨 왼쪽은 장보고 기지의 조감도, 가운데는 1985년 한국해양소년단연맹 한국남극관측탐험대가 남극에서 활동을 펴는 장면, 맨 오른쪽은 쇄빙선 아라온호의 항해 모습. 극지연구소·이동화 씨 제공우리나라에서 남극에 있는 세종과학기지까지 거리는 무려 1만 7천여㎞나 된다. 과거 남극은 먼 거리만큼이나 쉽게 갈 수도 없고, 가야할 당위성도 없는 '오지(奧地)'로 여겨졌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988년 남극에 세종기지를 건설한 데 이어 다음달 장보고과학기지를 준공, 전 세계 남극 진출사에 한 획을 긋는다. 남극이 '머나먼 오지'에서 '기회의 땅'이 되는 데는 정부와 기업, 민간단체의 노력과 피와 땀이 있었다.
■출발점은 수산자원 확보
대한민국이 남극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경제 성장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던 1970년대 중반. 박정희 전 대통령은 남극에 자원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해 원양어선을 남극으로 보내 크릴(새우를 닮은 갑각류)을 잡도록 했다. 원양어선인 남북호는 1978년 국립수산진흥원 수산 연구원들을 태우고 남극해로 출항해 세 달 만에 크릴 507t을 잡았다. 또 연구원들은 남극해 어장 환경, 크릴의 생물학적 특성 등에 대한 자료를 얻었다.
70년대 말 수산자원 확보 목적
크릴잡이 원양어선 진출이 시초
'기회의 땅' 민·관 노력 어우러져
2009년 쇄빙선 '아라온호' 취항
이후 우리 원양어선들의 크릴 어획은 매년 이어졌고, 남극 수산자원의 중요성을 인식한 정부는 1985년 3월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협약(CCAMLR)에 가입했다. 정부와 원양업체들은 1988년부터 8차례에 걸쳐 남극해의 수산자원 조사·개발을 위해 시범 조업을 했다. 1998년부터는 원양어선들이 크릴과 함께 메로(비막치어 또는 파타고니아 이빨고기)를 어획하며 우리나라는 남극해에서 조업하는 대표적인 원양국가로 자리매김했다.
■남극 대륙에 관심을 갖다
원양업체들이 남극해에서 크릴을 어획할 때 남극대륙 탐험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한국해양소년단연맹 윤석순 총재 등 지도자들은 한국남극관측탐험대를 꾸렸다. 당시 포항제철의 박태준 회장과 현대 정주영 회장 등이 청년들의 탐험을 지원했다. 1985년 등정반은 혹한과 고산증, 불면증을 이겨내고 세계 6번째로 빈슨 매시프(4,897m)에 올랐다. 탐험반은 킹조지섬에서 기지 후보지를 물색했다. 남극에 한국인으로 첫발을 내디뎠던 ㈜남경엔지니어링토건 이동화 대표는 "남극 탐험을 공식으로 인증받기 위해선 산과 바다를 다 탐험해야 했다. 난 수중탐사를 맡아 수심 28m 정도까지 세 차례 정도 탐사했다. 수온이 영하 1도∼영하 2도 정도라 온몸에 특수기름을 바른 뒤 슈트를 입고 입수했는데 그래도 차가웠다"고 회고했다.
한국남극탐험대의 성공적인 탐험에 고무된 정부는 남극조약 가입을 추진, 1986년 11월 세계에서 33번째로 남극조약에 가입했다. 당시 남극조약 가입은 남극조약협의 당사국들의 만장일치 동의로 결정됐는데, 외무부의 노력이 빛을 발했다.
■남극 진출 교두보 마련
1987년 정부는 남극 기지 건설에 들어갔다. 1987년 3월 한국과학기술원 부설 해양연구소에 극지연구실이 신설됐다. 이후 해양연구소 연구원들과 현대엔지니어링 기술자들은 킹조지섬에서 기지 후보지를 찾아나섰다. 이어 최적지 선정과 설계, 건설작업이 진행돼 1988년 2월 세종과학기지가 준공됐다. 세종기지는 대기과학, 지질학, 해양생물학, 우주과학 등 남극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를 본격화했다.
세종기지 건설과 활발한 연구 활동을 통해 우리나라는 1989년 남극 개발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남극조약협의 당사국(ATCP) 지위를 세계에서 23번째로 얻었다. 1990년에는 남극의 과학적 연구를 조정하는 남극연구과학위원회(SCAR)의 정회원 자격도 얻었다.
세종기지가 만들어졌지만 결빙해역에서 얼음을 깨고 항해와 연구가 가능한 쇄빙연구선을 직접 건조해 보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쇄빙선은 임차 비용이 부담스러웠고 빌리기도 쉽지 않았다. 특히 2003년 12월에는 세종기지에서 전재규(당시 27세) 대원이 사고로 순직하면서 극지 연구환경의 열악함이 부각됐다.
이에 정부는 쇄빙선을 직접 건조하기로 결정했고, 건조는 한진중공업이 맡았다. 2009년 11월 쇄빙선은 '아라온호'라는 이름을 얻고 취항했다.
■제2의 남극기지로 새 역사 쓴다
극지연구소 연구원들과 국내외 과학자, 환경·건축 전문가로 구성된 조사단은 제2의 과학기지를 짓기 위해 2007년부터 쇄빙선을 타고 현지 탐사를 진행했고, 동남극 테라노바만 연안을 최적지로 지목했다. 이어 정부는 남극조약 내 환경보호위원회로부터 기지 건설에 대한 만장일치 동의를 얻어냈다. 2012년 12월 공사에 들어간 장보고과학기지는 다음달 준공된다.
장보고기지는 최고의 단열 기술로 건축됐으며,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사용한다. 또 해수담수화 설비와 정화 시설을 갖춰 남극의 환경을 보호하고, 연구원들이 최적의 환경에서 연구·조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또 인근에 이탈리아와 독일의 과학기지가 있지만, 이들 모두 하계에만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장보고기지는 동남극에 있는 유일한 상주 과학기지로 평가받는다. 우리나라는 장보고기지 준공을 계기로 남극을 이해할 수 있는 보다 다양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게 됐다.
극지연구소 정호성 박사는 "세종기지가 남극권의 변두리인 남위 62도에 위치해 민감하게 변화하는 기후변화를 연구하기에 좋은 곳이라면, 남위 74도에 있는 장보고기지는 남극 연구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빙하학, 운석학, 고층대기물리학 등의 다양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라고 말했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