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의 품격] 1. '국민 반려견' 등극이 비극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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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때도 버릴 때도 유행 따라…가족도 '유통기한'이 있나요

'앗 산체다!'

제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외치기 시작합니다. 산체는 2015년 '삼시세끼'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국민 반려견'의 지위에 오른 품종입니다. 그전까지 치와와는 털이 짧은 단모 치와와가 대세였지만 이후 대세는 털이 긴 장모 치와와로 바뀌었죠. 인기가 많아져서 좋겠다고요?

저의 품종은 '장모 치와와'입니다
예능 '삼시세끼'로 '산체'가 뜨자
장롱에 갇혀 '새끼 빼는' 일을 했죠

몸값도 40만→200만 원 됐지만
곧 인기 떨어지니 버려졌네요

지난해 치와와 종만 626마리
가족에게서 버려져 거리 떠돕니다

■유명해져 더 무서워

1박 2일에 출연한 그레이 피레니즈 `상근이` TV 캡처
저는 새끼를 낳기 위한 '부견'이었습니다. 품종이 좋아서는 아니에요. 쉽게 말하면 전 '무족보'랍니다. 상황이 달라진 건 산체의 인기로 장모 치와와가 귀해졌기 때문이죠. 원래 장모 치와와의 가격은 40만~50만 원 정도였는데, 산체가 유명세를 탄 이후 제 몸값은 200만 원까지 뛰었어요. 이마저도 없어서 못 살 정도였다네요. 그래서 족보도 없는 저도 '새끼 빼기'에 동참해야만 했어요. 만약 전문 브리더(Breeder·개나 고양이의 혈통 관리와 분양을 하는 사람)의 손에서 길러졌다면 충분히 성장한 후에 교배를 시작했을 거예요. 하지만  '새끼 빼기 공장'의 부속품이었던 저는 완전한 성체가 되는 한 살(사람 나이로 열 살) 전부터 교배를 시작해야 했어요. 저는 대규모 강아지 공장이 아닌 일반 가정에서 '새끼를 빼던' 개 였죠.

저는 잘 짖지 않아서 성대수술을 할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도 저는 부견이 되기 전 성대 수술을 먼저 받았어요. 장롱에 가두어진 상태로 새끼를 빼야 했기에 혹시 교배 과정에서 소리가 새어나가면 민원이 발생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라나요.

장모 치와와의 인기가 떨어지며(가격이 내려가며) 얄궂은 운명의 장난이 또 시작됐어요. 저는 더는 존재가치가 없어졌어요. 작고 귀여운 강아지를 선호하는 세태에서 20개월이나 된 저는 팔리기에도 모호한 나이였어요. 인기가 사그라지기 시작한 품종이라 주인 입장에서 사료만 축내는 개였을 거예요. 결국 저는 버려졌습니다.

저뿐만이 아니에요. 많은 '산체'들이 버려졌답니다. 2013년 400마리였던 버려진 치와와는 2016년 626마리까지 늘어났어요. 장모 치와와 만의 문제냐고요? 예능프로그램 '1박 2일'의 '상근이(그레이트 피레네)'도 유행이 지나가자 가차없이 버려졌어요. 2010년 전국에 97마리가 버려졌던 그레이트 피레네는 2013년 무려 172마리나 버림받았어요.

■우리는 인형이 아니에요

삼시세끼에 출연한 장모 치와와 `산체` TV 캡처
우리가 주인에게 귀여움을 받는 기간은 딱 1년이에요. 저희를 정말 아끼는 분들은 미디어를 통해 인기 품종이 생기면 한숨부터 쉰답니다. '작고 귀여운' 강아지 티를 벗는 순간 마구 버려질 것을 알기 때문이죠. 저희가 강아지일 때는 활동량이 많지 않아 돌보는 데 큰 어려움이 없어요. 성견이 되면  힘들 수밖에 없죠. 우리가 단순히 '작고 귀여운' 애완용품이었다면 그 효용이 감소하는 거죠.

우리에 대해 잘 모르고 키우기 시작하는 게 사실 우리를 버리는 가장 큰 이유랍니다. 강아지 시절에는 종의 특징이 잘 드러나지 않아요. 크면 달라요. 산체와 같은 장모 치와와는 털이 많이 빠져요. 천식을 앓거나 호흡기가 약한 사람들은 저와 함께할 수 없어요. 깔끔한 스타일이라 옷에 반려견의 털이 묻는 걸 질색하는 분도 우리와 함께할 수 없죠.

우리를 키우게 되면 어려운 점도 많아요. 귀엽기만 했던 모습이 1년이 지나면서 짖기도 하고 아끼는 물건과 가구를 씹어 놓기도 하죠. 배변 훈련을 하지 않았다면 집안은 엉망이 될 거예요. 이웃의 눈총을 받는 일도 생기고, 하룻밤 집을 비우기도 쉽지 않아요.

이런 모습을 바라지 않는 것은 알아요. 하지만 우리가 털도 빠지지 않고, 똥오줌도 싸지 않고 온종일 얌전히 주인만 기다리는 인형은 아니잖아요?

 장병진 기자·김강현·서재민 PD joyful@busan.com

 그래픽=류지혜 기자 bir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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