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은 그림자 빼고 다 밟힌다” 농담처럼 안 들리는 교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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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5명이 털어놓은 학교 현장

초등학교서 손가락욕 나무라자
아이 입에서 나온 말 “아동학대”
교사 못 미더워 학생에게 녹음기
툭하면 교장 찾고 교육청 신문고
코로나 겪으며 신뢰 단절 심해져
교사·학부모는 대립 관계 아냐

15일 스승의날을 맞아 현직 교사 5명과 심층인터뷰를 통해 ‘요즘 교실’을 들여다봤다. 교사들은 학부모 민원 등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교실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산일보>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 중인 부산지역 현직 교사들. 이재찬 기자 chan@ 15일 스승의날을 맞아 현직 교사 5명과 심층인터뷰를 통해 ‘요즘 교실’을 들여다봤다. 교사들은 학부모 민원 등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교실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산일보>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 중인 부산지역 현직 교사들. 이재찬 기자 chan@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시대는 가고, ‘스승은 그림자 빼고 다 밟힌다’는 자조 섞인 농담의 목소리가 2023년 교사들에게 나오고 있다. 90% 이상의 교사가 퇴직을 고민한 적 있는 교권 추락의 시대. 〈부산일보〉는 설문조사 이후 5명의 현직 교사와 만나 2023년의 교실을 들여다봤다. 무너진 교권은 단순히 교사 개개인의 위기를 넘어 공교육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추락한 교권 회복을 위해 학부모, 교사, 학생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교육 주체들의 자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녹음기까지 등장한 불신의 교실

“선생님 저 무섭고 덜덜 떨려요. 아동학대에요 선생님.”

시끌벅적한 아침, A 교사가 담임으로 있는 초등학교 교실에서 한 학생이 친구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지속적으로 내밀었다. 가운데 손가락을 드는 행위는 욕이며 친구에게 그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수차례 가르쳤다. 하지만 그때마다 심드렁한한 태도의 “네”라는 대답뿐이었다. “선생님이 가운데 손가락으로 친구 놀리고 하지 말라고 했지?” 강한 어조로 다그치자, 아이의 입에서 아동학대라는 말이 돌아왔다. 8년 차 초등학교 교사 A 씨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A 교사는 “훈육을 아동학대라고 말하는 학생에게 순간적으로 위축됐고 아동학대와 훈육은 다르고 친구를 놀려서는 안 된다고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는 현실에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문제를 일으킨 학생을 어떻게 훈육했는지는 그날 저녁이면 학급 모든 학부모가 아는 이야기가 된다. ‘아이를 제대로 훈육하지 못해 교실 분위기가 엉망이다’는 이야기부터 ‘훈육이 너무 강해 아이들이 기죽는다’ 같은 말로 교실의 분위기는 왜곡돼 확산된다.

13년 차 중등 교사인 B 교사는 “학부모들의 카톡방 등 SNS에서 신학기 이후 한 달 안에 교원 평가가 이뤄진다”며 “교사가 잘못된 이미지를 형성하면 1년 내내 학부모와 학생 모두 교사와 교실을 신뢰하지 못하는 광경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학부모가 교사를 믿지 못해 학생에게 녹음기를 쥐어주는 행태도 2023년에 볼 수 있는 새로운 교실의 모습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오프라인 교실이 낯선 학부모가 늘어나면서 학부모가 교실을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는 강박감이 표출된 것이다. 현장체험학습의 동선을 확인한 뒤 동행하는 학부모도 있다.

6년 차 초등 교사인 C 교사는 “학부모가 정확하게 발생 시간을 언급하고 그때 있었던 일을 구체적으로 항의하면서 녹음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교원힐링센터 등에서 상담을 받기도 했다”며 “현장체험학습에 따라와 왜 우리 아이가 수저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데 돌보지 않았냐고 항의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4년 차 중등 교사 D 교사는 “학급에 문제가 생기면 교장을 찾아가고 교육청 신문고를 찾아가는 일도 예전에 비해 많이 늘었다”며 “학생의 문제를 학교에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교사라는 신뢰가 학부모와 교사 간에 부족한 듯하다”고 말했다.

지난 3년간 부산시교육청 교권보호위원회 개최 내용을 보면 코로나19 확산으로 원격수업을 진행한 2020년 72건이던 교권보호위원회 의결 횟수는 대면 수업이 증가한 2021년 97건, 지난해 84건을 기록했다. 지난해 84건의 교권 침해 횟수를 유형별로 보면 △모욕·명예훼손 50건 △성적 굴욕감·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 14건 △상해·폭행 7건 △협박 3건 △공무 방해 1건으로 집계됐다.

■무너진 신뢰 재건할 키워드는 ‘소통’

교권 회복과 학교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상호 간의 이해의 폭을 넓히는 소통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학부모, 학생은 교사를 존중하고 교사도 학부모의 교사를 향한 아쉬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학부모들은 코로나19를 겪으며 교사, 학생, 학부모 사이의 단절이 더욱 심화한 점을 요즘 학교의 아쉬움으로 꼽는다. 부산학부모연대 강진희 상임대표는 “코로나 시대에 진행된 비대면 수업을 학생과 함께 보며 아쉬움을 느낀 학부모들이 많다”며 “그때는 상담도 잘 이뤄지지 않아 갑갑하다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고 밝혔다.

부산다행복교육학부모네트워크 정미하 운영위원은 “초등학교는 상대적으로 선생님과 학부모의 소통이 활발하나 중학교로 올라갈수록 아이가 반장이 아닌 이상 일반 학부모들이 학교에서 선생님과 얘기할 기회가 거의 없다”며 “가정통신문 외에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방법이 없으니 답답한 마음에서 불신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학부모는 교원평가가 무너진 신뢰를 재건할 방법임을 주장하기도 한다. 교육청학교학부모회총연합회 김민경 전임 회장은 “교원평가가 교사를 질책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교사를 격려하고 학부모, 학생의 요구를 아는 소통의 취지로 진행됐으면 한다”며 “학부모와 교사는 서로 대립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의 관계라는 것을 교사와 학부모 모두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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