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페르소나
이필(1972~ )
내 나이 열여덟 살 때 점쟁이가 말했습니다
죽기를 소원하는 한 늙은 여자가
내 안에 홀연히 들어와 살고 있다고 말입니다
밤이 오면 나직한 기침이 늙은 여자의 심기를 살피며
가만가만 책장을 되작이곤 했습니다
어떤 사정으로 그렇게 죽고 싶어 하는지
물어볼 수도 쫓아낼 수도 없었습니다
몇 해를 앓다가 나는 점쟁이를 다시 찾아가
그녀를 내보낼 비방을 얻어왔습니다
느릅나무 껍질을 욕조에 띄우고
혈로 얼룩진 속옷가지 셋을 태우고
마당 안쪽 동백나무 밑에 열쇠를 묻었습니다
이듬해 붉은 꽃들이 가지에 들어섰습니다
(하략)
- 계간 〈문파〉(2018 봄호) 중에서
페르소나는 연극에서 가면을 쓰고 나오면서 유래된 것으로 알고 있다. 독립된 인격체, 자아 등을 통칭한다. 우리 모두가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과 타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다시 자신의 모습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시인 또한 자신의 내부에 살고 있는 어떤 인격체를 시로 표현해 보고 있다. 점쟁이를 찾아가지 않더라도 인간의 내부에 ‘죽기를 소원하는 늙은 여자’나 살기를 원하는 젊은 여자가 느껴질 듯. 가끔 어린 아이가 내부에 있기도. 어르신 분들께 물어봐도 아직 마음만은 이팔청춘이라 하지 않던가.
성윤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