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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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돈 스포츠라이프부장

‘욜로 시대’ 재도약 준비하는 부산 갈맷길
조성 15년 접어들며 재정비 필요성 커져
현장 가 보니 일부 코스·시설 개선점 보여
작은 부분까지 챙기는 세밀한 행정 기대

지난 주말 해안 갈맷길을 걸었다. 금정산을 낀 동네에 살지만, 바다는 늘 동경의 대상. 차를 두고 도시철도와 동해선 열차를 이용해 월내역에 도착해 인근의 임랑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이름도 예쁜 해맞이로를 따라가니 해변이 나왔다. 대부분의 부산 바닷가와 달리 이곳은 개발이 덜 된 덕에 제법 고즈넉한 운치마저 느껴졌다.

임랑해수욕장을 우선 찾은 이유는 ‘욜로 갈맷길’ 때문이다. 부산에는 이미 9개 코스 278.8km에 달하는 ‘갈맷길’이 조성돼 있다. 이 중 대중교통과 연계성이 좋고 걷기에도 크게 부담이 없는 100km 구간을 10개 코스로 다시 추린 것이 욜로 갈맷길이다. 인생은 한 번뿐이니 후회 없이 즐기며 살자는 뜻의 욜로(You Only Live Once)는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현재의 행복을 찾아 누리자는 삶의 태도를 일컫는다. 여기에 경상도 방언인 욜로(이리로)를 덧붙여 지은 이름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욜로 갈맷길은 코스별로 10km 안팎으로 3시간 정도면 완주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한다.


기존 갈맷길 중 해안코스 7개와 강변코스 1개, 산행코스 2개 등 10개 코스를 욜로 갈맷길로 선별, 3월부터 본격 마케팅을 통해 생활 속 걷기 문화의 새 붐을 일으키려는 게 부산시의 구상이라고 한다. 부산의 상징 새 갈매기에 길을 붙여 ‘갈맷길’을 조성한 게 2009년 무렵이니 벌써 15년이 흘렀다. 욜로 갈맷길은 기존 갈맷길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자 시즌 2인 셈이다.

임랑해수욕장에서 일광해수욕장 간 9.1km 구간이 욜로 갈맷길 1코스다. ‘갈맷길 더 비기닝’이라는 그럴듯한 이름도 가졌다. 일을 핑계 삼아 평소 운동과 거리를 꽤 뒀던 ‘초보’로서 선뜻 길을 나선 데에는 ‘비기닝’이라는 부담 없는 이름도 작용했다.

너무 쉽게 나선 탓일까. 수려한 부산의 해안 풍경을 즐기며 완보하려는 욕심은 시작부터 난관을 만났다. 임랑해수욕장 끝에서 시작한 산책로가 곧 도로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조용한 바닷가 낭만은 사라지고 한동안 스쳐 지나가는 차량 행렬 눈치를 보며 부담스럽게 걸어야 했다. 이기대 수변공원 주변으로 조성된 해안 산책로를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을까.

20분 남짓 고행을 끝내고서야 다시 해안 길로 접어들 수 있었다. 중동항을 지나고 붕장어(아나고)로 유명한 칠암항에 이르자 방파제 너머 나란히 서 있는 등대들이 반겼다. 붕장어와 갈매기, 야구를 형상화한 등대들은 ‘여기가 마 부산아이가’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비록 인공 건축물이지만, 다른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날것 그대로 부산의 이미지를 보여 주는 현장이다. 이어진 신평소공원에는 범선 모양의 전망대가 있었다. 눈 아래 펼쳐진 바다에는 공들여 새긴 듯 뚜렷한 지형의 변화를 볼 수 있는 퇴적층이 파도와 싸우고 있었다.

조금 전 느낀 불편을 잊을 무렵 다시 고행의 길이 시작됐다. 온정마을에서 이동항 간 약 2km 구간 역시 일광로를 질주하는 차량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발을 옮겨야 했다. 군데군데 난간이 있는 나무 덱 길을 조성해 보행에는 크게 어려움이 없었지만, ‘욜로’와는 어울리지 않는 길임에는 틀림없었다. 이동항에서 일광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구간의 언덕길 역시 마찬가지. 특히 어둑어둑 해 질 무렵 달려오는 차량의 전조등을 속절없이 마주해야 하는 점은 크게 아쉬웠다.

3시간 남짓 산책을 마치고 일광역에서 열차에 몸을 실었다. 평소 안 하던 운동을 감행한 뒤 느낄 법한 뿌듯함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부추김에 동행한 이의 눈치를 보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평소 불평을 자주 하는 탓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프로 불만러’라는 핀잔을 종종 듣는다. 누군 누그러뜨려 ‘기자답다’는 말로 에둘러 표현하기도 한다. 그날 산책이 부산에 산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진 기회였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부산을 사랑하는 ‘불만러’로서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았다는 점 역시 명확히 하고 싶다. 이동이 쉽지 않은 코스뿐만 아니라 미흡한 관리실태도 제법 눈에 밟혔다. 지난해 9월 들이닥친 태풍 힌남노의 심술이라 짐작되는 상처마저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기도 했다.

부산시와 일선 구·군이 2030세계박람회 유치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한다. 4월 예정된 국제박람회기구 실사단 방문 대비만 해도 벅찬 실정이리라. 그래도 프로 불만러로서 한마디 보태지 않을 수 없다. 소시민의 작은 불만을 살피다 보면 큰일을 그르치는 위험도 줄어들 것이라 믿으니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지 않는가.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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