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익의 뷰파인더] BBC가 유튜브와 손잡은 이유
BBC, ‘유튜브 퍼스트’ 전략
미디어업계 큰 파장 일으켜
‘시청자 있는 곳으로 간다’
미래 위한 중차대한 방향타
부산일보TV 선거 방송 시도
시청자·독자 향한 노력 계속
영국 공영방송사 BBC가 올해 들어 갑자기 세계 미디어 업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BBC가 가까이 둘 것 같지 않은 유튜브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세계 주요 미디어들이 ‘디지털·모바일 퍼스트’라는 이름으로 부단히 혁신을 진행하는 상황에서 초대형 공영방송 BBC까지 대놓고 ‘유튜브 퍼스트’를 외쳤으니 적잖게 놀랄 일이긴 하다. 레거시 미디어의 상징과 같은 BBC가 가장 중요한 콘텐츠 유통 채널로 유튜브를 낙점했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공중파와 케이블TV, IPTV에서 유튜브와 OTT로 흘러가는 영상 미디어의 흐름 속에, BBC까지 세계 최강 유튜브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생존을 위한 전략적 변화를 꾀한 셈이다.
BBC는 다큐멘터리, 예능, 어린이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유튜브용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고 맞춤형 커뮤니티와 신규 채널을 확대하기로 했다. 동시에 신뢰도 높은 뉴스와 라이브 콘텐츠를 유튜브에서 제공해 글로벌한 성장을 꾀한다고 선언했다. 방송 내용을 자르거나 요약해서 자사 유튜브 채널에 올리는 정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채널과 프로그램으로 신규 수익 모델까지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미디어 중 가장 권위 있고 공정한 방송사로 신뢰를 쌓은 BBC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단순히 콘텐츠를 더 널리 퍼뜨리려고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려는 의도인지, 뉴미디어의 거대한 흐름에 올라타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려는 시도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지금껏 BBC는 디지털화를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해왔다. 자체 플랫폼도 구축해 승부를 걸었다. 그런 BBC가 경쟁 플랫폼과 동행을 선언한 것 자체가 상상하기 힘든 결단이다.
여러 자료와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하면, BBC는 TV수상기나 셋톱박스 시대를 넘어 시청자들이 있는 곳으로 옮겨가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시청자가 많이 머무는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더 쉽게 만나게 하겠다’라고 유튜브를 선택한 취지를 설명했다. 시청자에게 콘텐츠가 닿지 않으면 공영방송의 접근성과 브랜드 경쟁력, 영향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의미다. 실제 영국에서 유튜브 이용자가 BBC를 능가했고, 젊은 연령대에서는 유튜브 점유율이 압도적인 것으로 전해진다.
BBC 입장에서는 지속가능한 환경을 유지하면서 미래에 살아남기 위해 단순한 유튜브 채널 운영 차원을 넘어선 단계를 구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젊은 시청자들이 유튜브에서 콘텐츠와 뉴스를 소비하는 상황에서 공중파의 오랜 문법을 들이대봤자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이르렀을 것으로 보인다.
한때 너나없이 라디오가 사라질 거라고 쉽게 말했다. 그런데도 라디오는 건재하다. ‘보이는 라디오’라는 이름으로 유튜브를 타고 공간을 더 확장하고 있다. 라디오 진행자와 초대 손님의 생생한 영상을 생중계하면서 음성과 주파수의 한계를 벗어나 버렸다. “나머지 이야기는 유튜브에서 이어집니다”라는 멘트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가장 ‘올드하다’는 신문사라고 그대로 있으란 법은 없다. 누구든 어디서나 한계 없이 방송하고, 시청할 수 있는 시대다. 방송법, 신문법의 족쇄를 유튜브가 단박에 날려버린 마당에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올해 출범한 부산일보 TV방송국의 유튜브 대표 채널인 ‘부산일보TV’는 6·3 지방선거를 맞아 지역신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장장 8시간 30분에 달하는 실시간 ‘끝장 개표방송’에 도전했다. TV방송국 기자 3명이 진행자로 나서고, 여야 정치인과 취재 기자가 스튜디오에 출연해 상황을 분석하며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실시간 개표 상황을 그래픽으로 제작해 표출하고, 각 선거 캠프에 영상취재기자와 PD들이 총출동해 현장을 중계했다. 직전 선거 기간에는 민심르포, 후보 현장인터뷰 등 다양한 기획 콘텐츠를 생중계하거나 업로드해 호응을 얻었다. 공중파 방송과 달리 지역에만 천착한 개표 방송은 최고 동시 접속자 8000명, 조회수 27만 회를 기록해 지역 신문사로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처럼 무모한 도전이 가능했던 건 유튜브라는 막강한 플랫폼 덕분이다. 시청자와 독자의 시간은 이미 스마트폰으로 이동했다. 전국의 시청자들은 유튜브와 SNS에 모여 이번 선거와 관련한 콘텐츠를 접하고, 서로 소통하며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BBC의 선택처럼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아가, 그들에게 맞는 콘텐츠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팬덤’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 미디어의 숙명이 된 것이다.
플랫폼 문법은 시시각각 변하는 시청자·독자의 성향 등을 치밀하게 분석하면서 진화한다. 어떤 플랫폼에서든 이용자와 접점을 놓치지 않는 미디어가 살아 남는다. 부산일보TV도 이제 막 시청자·독자가 있는 곳을 향해 첫걸음을 내디뎠다.
박세익 TV방송국장 run@busan.com
박세익 기자 ru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