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박·캠핑, 단속과 관광의 차이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차박으로 춘향제 추억을 만드세요.’ 선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지만, 이 홍보 문구에 이끌려 지난 4월 30일~5월 6일 전북 남원시에서 열린 제96회 춘향제를 찾았다. 일제강점기였던 1931년 남원 시민들이 성춘향의 절개와 민족의 자긍심을 기리려 자발적으로 시작한 춘향제는 100주년을 앞둔 국내 최장수 지역 축제다. 전통 축제가 차박이라는 새로운 여행 방식을 품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올해 춘향제 기간 중 전북 남원시가 차박 희망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한 남원종합스포츠타운 주차장.
숙박난이나 교통 혼잡 우려로 부산에서 차를 몰고 출발할 엄두를 내기 쉽지 않았지만, 남원시는 사전 신청자에게 공공시설 주차장을 무료 배정하고 화장실과 샤워장, 행사장 순환 셔틀버스까지 제공했다. 남원종합스포츠타운, 함파우 소리체험관, 요천생태공원 등 여섯 곳에 340대를 수용한 것이다. 차박을 축제 질서를 어지럽히는 골칫거리로만 보지 않고, 원거리 방문객의 체류를 유도하는 장치로 활용한 셈이다. 차박 수요를 방치하면 민원이 되지만, 정책적으로 관리하면 관광객 유치로 이어진다는 점을 보여 준 사례다.
경기도 임진각 관광지 내에 자리 잡은 평화누리캠핑장 카라반 시설. 사진=평화누리캠핑장 홈페이지
경기도 파주 평화누리캠핑장 사례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경기관광공사는 이곳의 카라반·글램핑 시설과 DMZ(비무장지대) 관광 자원을 활용해 해외 관광객 유치에 나섰다. 제3땅굴, 도라전망대를 돌고 파주 전통시장 로컬 맛집 방문에 이어 저녁에 캠핑장으로 돌아오는 여행 상품을 여행사와 공동 개발했다. 외국인들이 캠핑장을 문자 그대로 ‘베이스캠프’ 삼아 지역의 자연, 역사, 음식, 야간 경관을 즐기게 만든 전략이다.
항공편으로 입국하는 외국인들이 캠핑 장비를 갖고 올 수 없으니 카라반·글램핑 숙박은 당연한 수순. 여기에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비무장지대 인근 숙박’이라는 반전 스토리텔링을 가미한 덕분에 2024년 1200명을 유치한 데 힘입어 올해는 2500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 편의점 로손의 주차장 차박 개념 이미지. 사진=일본RV협회 홈페이지
일본 편의점 로손의 주차장 유료 숙박 시도도 흥미롭다. 로손은 여유 주차 용지를 유료로 제공하는 ‘차중박’(車中泊·차박의 일본어 표현) 서비스를 17일부터 확대해 연내 약 70개 점포 규모로 운영할 계획이다. 지난해 여름 7곳에서 시범 도입했는데 연휴 기간 평균 가동률이 90%를 넘으면서 호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서비스는 단순히 주차면을 내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전용 홈페이지에서 예약 후 결제(1박 2500엔)하면 주차면 2개와 전기 사용, 화장실 이용, 쓰레기 배출 편의까지 제공된다.
무질서·알 박기·오물 투기 등 민폐가 될 수 있는 차박을 합법적이고 위생적인 숙박 거점으로 바꾼 결과 지방 관광 활성화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 언론은 숙박비 상승과 고령자 차량 여행 증가로 편의점 차박 이용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 6월 부산 강서구 가덕도 천성항 야외 공터에 텐트가 방치된 채 널브러져 있다. 부산일보DB
다양한 캠핑과 차박 유형이 등장하고,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도 성과를 내고 있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료 공영주차장과 공원, 노지가 ‘차박 명당’ ‘캠핑 성지’로 좌표가 찍히고 나면 몸살을 앓기 쉽기 때문이다. 부산 강서구 천성동 천성항 일대와 기장군 해안은 고질적이다. ‘장박 텐트’나 무개념 차박족 탓에 미관을 해치고 주민 생업에까지 불편을 주면서 철거 행정대집행이 반복되고 있다.
민폐 차박, 진상 캠핑은 근절돼야 한다. 하지만 단속만이 능사가 아니다. 한때 무료 노지 캠핑객들이 전국에서 몰려 부작용이 커지자, 지자체가 유료 캠핑장으로 정비한 뒤 관광객 유치에 성공한 충북 충주시 목계솔밭캠핑장이 좋은 사례다. ‘남한강 차박의 성지’를 내걸고 168곳의 야영 사이트를 갖춘 정식 캠핑장으로 2023년 개장한 뒤 월 평균 7000명 이상이 방문하는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것이다.
충북 충주시 목계솔밭캠핑장 전경. 유료 캠핑장으로 단장한 뒤 외지 관광객 유입이 늘었다. 사진=충북 충주시 홈페이지
“캠핑 수요는 이미 글램핑, 카라반, 돔하우스, 차박, 체험형 상품으로 옮겨 가고 있는데 관련 제도는 여전히 ‘천막’ 기준에 머물러 있다.” 지난 3일 김용태 의원실 등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K-캠핑 관광 활성화를 위한 세미나’에서는 관광 자원으로 키우기 위한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천막 이외 다양해진 야영 시설의 법적 지위, 건축면적 기준, 미등록 시설 정비, 외국인 수용 태세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산도 이 문제의식에서 비껴갈 수 없다. 올해 1~5월 부산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93만 657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40% 늘었다. 전국 평균(21%)의 두 배에 가까운 성장세로 그야말로 ‘글로벌 핫플’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대형 공연이나 국제행사가 열릴 때마다 숙소 구하기 전쟁이 벌어지는 것도 낯선 일이 아니다. 지난 6월 BTS 부산 공연 때 터무니없는 숙박 요금이 기승을 부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숙박 시설의 공급도 늘어나야 하겠지만 성수기와 축제, 공연 기간의 숙박 수요를 분산시키는 보완 장치도 필요하다. 캠핑과 차박이 대안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는데, 야외라는 특성상 부산만의 특색이 있는 관광 콘셉트를 구현할 수 있다면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서울시가 8월 한 달간 한강공원에서 운영하는 임시 야영장 ‘한강 밤핑’ 포스터. 서울시 제공
체류형 도시 관광, 지역 상권의 활성화 고민은 부산만의 것이 아니다. 서울시가 8월 한 달간 여의도·뚝섬 한강공원에서 운영하는 임시 야영장 ‘한강 밤핑’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서울시는 사전 예약 방식으로 텐트 200동 규모의 임시 야영장을 조성하고, 시범사업 기간 장소 이용료를 무료로 했다. 또 야간 디제잉·영화 상영 같은 행사와 배달 할인 혜택을 묶고 한강버스·자전거·수영장까지 연계해서 ‘24시간 체류하는 한강’ 모델을 시도한다. 강변 캠핑을 방치하거나 단속하는 대신, 도심 관광 자원으로 관리하면서 인근 21개 전통시장·골목상권 활성화까지 노린다는 대목이 부산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부산은 강과 산, 바다를 모두 가진 도시다. 낙동강 하구의 생태 자원, 금정산과 기장 산지, 가덕도와 기장 해안, 영도와 북항의 항만 야경은 다른 지역이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관광 자산이다. 이 자원을 무질서한 노지 차박·캠핑에 내맡겨서는 안 된다. 아웃도어 여행 수요는 이미 우리 곁에 실재하는 흐름이다. 방치하면 민원을 낳고, 배척하면 갈등을 부르지만 활용하면 관광 수요가 된다. 이용 규칙과 적정 이용료를 마련하고, 안전과 환경 기준을 세우고, 지역 상권과 연결하면 체류형 관광이 될 수 있다. 캠핑을 불청객 취급할 것인지, 해양도시 부산의 새로운 관광 유입 자원으로 설계할 것인지가 단속과 관광의 차이다.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