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우리 곁의 산사

  • 가
정광용 기자 kyjeong@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정광용 독자여론팀장

부산 첫 근대학교 명정학교 세운 범어사
일제강점기 땐 지역 3·1만세운동 주도
한국전쟁 시기 임시 국가현충원 역할도
비오마인드 통해 ‘힙한 불교’로 가까워져

명정학교의 존재를 최근에 알았다. 같은 이름의 명정학교장학재단 강길주 이사장을 만나면서다. 강 이사장은 외조부인 이산 스님의 뜻을 기려 장학재단을 만들었다.

이산 스님은 범어사 주지를 역임하며 일제강점기 민족교육에 헌신한 선각자다. 성월 스님 등과 함께 1906년 부산에선 최초의 근대학교라 할 수 있는 명정학교 설립을 이끌었고, 현 보성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학교 운영에도 참여했다. 식품회사 사업가인 강 이사장은 늦게나마 외조부의 헌신을 재조명하고 인재 양성 의지를 되살리기 위해 장학재단을 설립했고, 명정학교의 이름을 땄다.

명정학교는 오늘날 금정중학교와 청룡초등학교의 전신으로, 곧 범어사가 세운 학교다. 수행과 기도의 공간인 사찰이 근대학교를 설립해 신학문을 가르치는 데 앞장섰다는 사실은 의외로 다가왔다.

범어사와 명정학교는 독립운동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 1919년 3·1만세운동 때 부산의 만세운동을 주도한 곳이 범어사와 명정학교다. 기록에 따르면 3·1운동을 앞둔 1919년 2월 만해 한용운이 당시 범어사 주지인 성월과 담해, 이산 스님을 만나 봉기에 대해 논의했고, 범어사 스님들은 만세운동에 함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거사일은 동래읍 장날인 3월 19일. 3월 18일 기습 시위에 이어 19일 오후 동래시장에서 대대적인 “대한독립만세”가 울려 퍼졌다. 이 만세운동에 명정학교 학생들도 동참했으니, 이로 인해 연행된 인물은 1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때 김법린은 일제의 총칼을 피해 상하이로 탈출,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펼치게 된다.

이 사건으로 명정학교는 폐교됐다가, 1926년 불교전문강원으로 개원된 뒤 1943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다시 폐원되는 비운을 맞게 된다.

국난의 위기에서 범어사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은 마지막 방어선이었다. 범어사는 전장에서 희생된 장병들의 유해를 수습하고 안장하는 공간이 됐다. 스님들이 전사자들의 시신을 거두고 장례와 안장에 힘을 보탰다. 전쟁 후 1956년 국군묘지가 조성되기 전까지 범어사는 임시 국가현충원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범어사가 ‘국가 현충 사찰’로 인정받은 것도 이런 역사 때문이다.

신라 문무왕(678년) 때 창건된 범어사는 의상 대사가 신라에 화엄종을 전하기 위해 창건한 10개 화엄사찰(화엄십찰) 중 하나다. 임진왜란 때는 부산에 가장 먼저 상륙한 왜군의 공격에 절 대부분이 불타는 아픔도 겪었다. 1602년 선조 35년 때 중건이 시작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 범어사의 건물 대부분은 조선 후기에 세워진 것들이다.

범어사엔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도 있다. 국보 삼국유사(권 4·5)를 전국 사찰 중 유일하게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삼국유사 원본은 범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가끔씩 범어사를 찾아가곤 한다. 금정산 국립공원에 자리 잡은 범어사는 부산 시민에겐 친숙한 산사다. 하지만 간과한 역사가 적지 않음을 이번에 알게 됐다. 1300여 년의 역사를 이어오며 국가를 위해, 민중을 위해 굵직한 기여를 한 사실을 새롭게 되새기게 됐다.

오늘날 범어사는 또다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선문화관을 중심으로 지난해 ‘비오마인드(BEO Mind)’란 브랜드를 론칭하며 시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중이다. 비오마인드는 범어사의 수행문화와 사찰음식, 걷기·소리명상, 공예 등 다양한 콘텐츠를 연결해 범어사만의 독자적인 웰니스 브랜드로 만든 것이다. 이를 통해 범어사는 템플레킹(템플스테이+트레킹)이나 선명상 축제 등 여러 대중적인 활동을 활발이 전개하고 있다.

이는 최근 열풍이 부는 ‘힙한 불교’와 맞닿은 행보다. 선재·정관 스님으로 대표되는 사찰음식을 비롯해 트렌디한 캐릭터, 키링 등 용품과 다채로운 이벤트로 불교는 젊은 세대의 호응을 얻고 있다. 범어사 또한 비오마인드를 통해 시민·관광객과 접점을 넗히고 있으니, 지금 선문화관 앞에는 외국인을 맞이하기 위해 국제템플스테이 건축이 한창이다.

얼마 전 다시 범어사를 들렀다. 입구인 조계문(보물 1461호) 앞에서 난치병 환자 돕기 자선음악회가 열려, 트로트 등 대중가요가 크게 울리고 있었다. 산문 안에선 불경 독경 소리가 퍼지고 있어 묘한 대조를 이뤘다. 신라의 고승 원효 대사가 저잣거리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불교의 가르침을 민중에게 전하려 했다는데, 지나친 엄숙주의에서 벗어난 사찰의 모습에서 시민 곁으로 다가오려는 종교의 대중화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정광용 기자 kyjeong@busan.com

당신을 위한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