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으면 힘이 솟는 추어탕, ‘가을에만 먹는 보양식 아닙니다’ [박상대의 푸드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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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동네 형들을 따라 냇가에 가서 열심히 미꾸라지를 잡았다. 냇물에 들어가서 갈대숲을 휘저으면 가을 낮잠을 자던 붕어나 미꾸라지들이 족대에 걸려들었다. 형들은 냇둑에서 불을 피워 미꾸라지 몇 마리를 구워 나눠 주었다. 미꾸라지 고기에서 닭고기 맛이 났었다. 형들은 미꾸라지를 들고 집으로 가서 탕을 만들어 먹었다.

미꾸라지 양동이에 소금을 뿌리고, 뚜껑을 덮어 놓으면 미꾸라지들이 튀어 오르느라고 요란을 피우다가 이내 잠잠해진다. 소금물 때문에 몸속에 있던 이물질을 토해내고 죽은 것이다. 그러면 까칠한 호박순으로 주물러서 씻어내고, 솥에다 깨끗한 물을 붓고 끓였다. 그리고 굵은 뼈를 발라낸 후 무청이나 호박잎을 넣고 탕을 끓였다. 들깨가루와 매운 고추를 넣어 먹으면 입천장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맛있게 먹었다. 

전국적으로 추어탕이 유명한 고장은 남원이다. 성춘향과 이몽룡이 사랑을 싹틔우고 놀았다는 광한루원 부근에 있다. 약 60여 집 가운데 30퍼센트 정도가 원조라는 간판을 달고 추어탕을 만들어 팔고 있다. 서울은 물론 대도시에서는 ‘남원추어탕’이라는 간판을 내건 음식점들이 성업 중이다.

추어탕은 가을에 먹는 음식인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가을 추자를 쓰는 걸로 잘못 안 탓이다. 추어(?魚)는 작은 물고기를 가리키는 어려운 한자를 쓴다. 사계절 아무 때나 먹어도 된다. 노인들은 여름에 기운이 허할 때 보신탕으로 먹고, 중년 남성들은 늦가을에 추어탕을 먹는다. 가을이니 남성다움을 뽐내야 한다고 생각해 힘의 상징인 추어탕을 먹는 것이다. 실제로 추어탕에는 칼슘과 타우린, 피부에 좋은 콘드로이친, 불포화지방산과 단백질이 풍부해 남녀노소 특정할 필요 없이 몸에 좋은 음식이다.

내가 일하는 용산 남영동 회사 근처에 아주 남원식 추어탕을 맛있게 하는 추어탕전문점이 있다. 영업을 시작한 지 10년 남짓이지만 몇 십 년 전통을 가진 다른 추어탕집에 비하면 확실히 맛이 있다. “서울에서 두 번째로 맛있는 집”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친구들을 데려가면, 처음에는 긴가 민가 했다가도 맛을 보면 고개를 끄덕인다. “순 국산 미꾸라지만 씁니다. 수입산은 안 써요. 제가 남원 사람인데.” 주인아저씨는 손님을 속여 가며 돈 벌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들깻가루를 너무 많이 넣지 마세요. 끓일 때 적당히 넣었으니까 굳이 넣지 않아도 됩니다. 부추를 넣고 산초도 조금만 넣으세요. 미꾸라지 맛이 사라지니까.” 주인아저씨는 고향이 남원인 까닭이기도 하지만 전국에서 가장 맛이 좋은 남원산 무청을 넣어 끓인다고 한다.  

원주에 가면 원주식 추어탕집이 있다. 원주식에는 감자를 썰어 넣고, 생 미나리를 조금 넣는다. 무청 대신 말리지 않는 무 이파리를 넣는다. 그리고 남원식이 미꾸라지를 갈아서 넣은 데 반해 원주식은 통미꾸라지를 사용해서 탕을 끓인다. 물론 남원이나 원주, 어디든 갈아서 넣은 것과 통으로 넣은 것을 가려서 주문하면 된다. 

글 박상대 월간 '여행스케치' 대표 psd08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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