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속 중국 제조업이 커진다“…물동량 ‘쑥’ 한국 해운업 전략은

송상현 기자 songsang@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차이나 플러스 원 확산에 중국계 자동차·전자기업 진출 확대
람차방항 컨테이너 1000만TEU 돌파…물류 수요 성장세
국적 선사·기존 항로 넘어 중국발 화물·현지 공급망 선점해야

태국 방콕 시내 모습. 몇년 전만해도 일본 수입차가 대부분이었지만 전기차 등 중국차를 흔하게 볼 수 있다. 태국 방콕 시내 모습. 몇년 전만해도 일본 수입차가 대부분이었지만 전기차 등 중국차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중국 기업의 생산기지가 태국으로 옮겨가면서 관련 협력사들도 다 들어오는 상황입니다. 태국 내에 중국인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졌다는 게 느껴집니다”

지난달 부산일보가 태국 방콕 HMM 현지법인에서 만난 오세혁 법인장은 최근 현지에서 체감하는 변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실제 태국에서는 중국계 제조기업의 생산 거점 확대가 이어지고 있다. 중국을 중심으로 생산기지를 본토 밖으로 분산하는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이 확산하면서 태국의 산업 지형은 물론 항만·해운 물류 시장도 달라지고 있다.

◆차이나 플러스 원에 태국으로 몰리는 중국 제조업

차이나 플러스 원은 중국 내 생산 기반을 유지하면서 동남아 등에 생산거점을 추가해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전략이다. 미중 갈등과 통상 환경 변화에 따른 공급망 리스크, 중국 내 생산 비용 상승, 글로벌 기업의 공급망 재편 등이 맞물리면서 기업들이 생산기지 분산에 나서고 있다.

태국이 그중에서도 주목받는 이유는 탄탄한 제조업 기반과 아세안 시장 접근성을 동시에 갖췄기 때문이다. 자동차·부품 산업의 공급망이 구축돼 있고 전자·전기 분야의 생산 기반도 갖추고 있다. 태국 정부가 방콕 동쪽에 위치한 동부경제회랑(EEC)을 중심으로 외국인 투자 유치와 인프라 확충에 나서고 있는 점도 중국계 기업의 진출을 뒷받침하고 있다.

오 법인장은 “중국계 전자부품, 자동차, 타이어, 가구 등 여러 기업이 태국으로 이전해 생산이나 소싱 구조를 갖추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기차다. BYD를 비롯해 상하이자동차, 장안자동차, GAC, 그레이트 월 모터 등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태국 EEC에 생산 시설을 구축하면서 현지 자동차 산업의 판도도 바뀌고 있다.

자동차 등록 데이터 집계 매체인 베스트 셀링 카스 블로그의 태국 시장 통계 보고서 등에 따르면 중국 브랜드의 전체 자동차 시장 합산 점유율은 2020년 3%대에서 2025년 20%를 넘어섰다. 2026년 들어서는 월간 기준 40%를 웃도는 시기도 나타나며 일본계 브랜드와의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 방콕 시내에서도 BYD 등 중국 전기차와 대형 광고판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내국 람차방항의 주요 터미널 운영사 중 하나인 KLN시포트 전경. KLN시포트 제공 내국 람차방항의 주요 터미널 운영사 중 하나인 KLN시포트 전경. KLN시포트 제공

◆생산기지 따라 물동량도 이동…람차방항 몸집 키운다

중국 기업의 태국 투자는 자동차에만 그치지 않는다. 태국 투자청(BOI)에 따르면 중국의 태국 투자 신청은 2024년 810건, 1746억 밧으로 국가별 순위에서 2위를 기록했으며 2025년에도 982건, 1721억 밧으로 이어졌다.

생산기지 확대는 물류 수요 증가로 직결된다. 중국에서 태국으로 부품과 원재료를 들여오고, 태국에서 생산한 자동차·전자제품 등을 아세안과 글로벌 시장으로 내보내는 새로운 공급망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생산 시설과 함께 협력업체까지 진출하면 수출입 물량이 반복적으로 발생해 해상운송 수요도 커질 수 있다.

실제 태국의 교역과 항만 물동량도 확대되고 있다. 태국의 2025년 전체 교역액은 6846억 달러로 전년보다 12.9% 증가했다. 같은기간 태국 최대 항만인 람차방항의 화물 처리량도 1억 615만 톤(t)으로 6.6% 늘었고, 컨테이너 처리량은 1015만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로 7.2% 증가해 1000만TEU를 넘어섰다.

람차방항은 중국계 제조기업의 생산 거점이 집중된 EEC와 연결되는 핵심 물류 관문이다. 태국에서 생산된 제품을 아세안과 글로벌 시장으로 내보내는 해상 물류의 출발점 역할을 한다. 태국 정부는 람차방항의 3단계 개발을 추진하면서 연간 컨테이너 처리능력도 약 1100만TEU에서 1800만TEU로 키울 예정이다. 실제 방문한 람차방항 곳곳에서도 생산능력 확충을 위한 준비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태국의 동부경제회랑(EEC) 핵심 인프라 연결망을 보여주는 지도. 방콕 도심과 주요 공항, 항만, 그리고 EEC 지정 3개 주(차청사오, 촌부리, 라용)를 연결하는 교통 노선을 그리고 있다. 동부경제회랑 사무국(EECO) 공식 홈페이지 캡처. 태국의 동부경제회랑(EEC) 핵심 인프라 연결망을 보여주는 지도. 방콕 도심과 주요 공항, 항만, 그리고 EEC 지정 3개 주(차청사오, 촌부리, 라용)를 연결하는 교통 노선을 그리고 있다. 동부경제회랑 사무국(EECO) 공식 홈페이지 캡처.

◆HMM까지 역내 공략…국적 선사 태국 항로 경쟁 격화

한국 해운업계도 이미 태국 시장에서 오랜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HMM은 한국에서 일본·베트남을 거쳐 람차방항을 연결하는 인트라 아시아(아시아 역내) 서비스를 운영하며 중국·태국 간 서비스도 갖추고 있다. 미주·유럽 등 원양항로에 상대적으로 강점이 있는 HMM은 태국을 포함한 아시아 역내 서비스망 확대에도 나서고 있다. 2028년부터 1800~2800TEU급 중소형 컨테이너선 22척을 단계적으로 인도받을 예정이어서 이를 아시아 역내 네트워크 확대에 활용할 여지도 있다.

고려해운과 장금상선, 동진상선, 흥아라인, 남성해운, 팬오션, SM상선, 천경해 등도 태국에 현지 법인이나 대리점 등을 두고 람차방·방콕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이들 중소형 선사는 전통적으로 아시아 역내 시장에 강점이 있어 한국 주요 항만과 중국·베트남·태국을 잇는 정기 컨테이너 노선을 구축하고 있다.

HMM의 역내 서비스 확대에 따라 국내 선사 간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HMM이 인트라 아시아 서비스망을 강화하면 이 분야에 주력해온 중소형 선사들의 위기감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HMM태국법인 사무실. 현지인 70명을 포함해 73명이 근무 중이다. HMM태국법인 사무실. 현지인 70명을 포함해 73명이 근무 중이다.

◆‘선복’보다 ‘화물’…새 공급망 선점해야

결국 국적 선사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선복 확대가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지는 화물 흐름을 선점하는 전략이다. 중국→태국의 부품·원자재와 태국→아세안·글로벌 완제품 수출을 하나의 공급망으로 묶고, 전기차·배터리·전장·전자부품 등 성장 가능성이 높은 화물을 중심으로 현지 생산 초기부터 화주를 확보해야 한다.

중국 공장부터 태국 생산 시설, 물류센터, 최종 수출항까지 연결하는 종합물류 역량도 경쟁력이 될 수 있다. 공 컨테이너 공급과 보관, 내륙 운송, 통관 등을 결합해 글로벌 대형 선사와 중국계 선사와 차별화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태국 항로를 확보한 국적 선사들에 기회가 열려 있지만, 단순한 선복 확대만으로는 차별화하기 어렵다”며 “공급망을 얼마나 선점하고 차별화된 터미널 연계 서비스를 확보하느냐가 관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재)바다의품과 (사)한국해양기자협회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송상현 기자 songsang@busan.com

당신을 위한 추천 기사